# 한달 전 청명절 때 써놓은 포스팅. 큰 아이가 처음으로 외국 친구네 집에서 슬립오버(파자마파티)를 하고 온 후기 입니다 ^^
오늘부터 이 곳 학교는 일주일간 봄방학이다. 이번주 금요일이 청명절이어서 금~일 연휴인데, 국제학교는 청명절이 있는 주에 1주일간 방학을 한다.
한국에서 숙제도 없는 몬테소리식 영어회화 학원만 1년 반 정도 다니고 이 곳에 온 큰 아이는 생일이 빨라 지난 해 하반기부터 4학년에 다니고 있다. 미국 국제학교라8~6월을 한 학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캐나다 선생님이 몬테소리식으로 부담없게 가르치는 재미있는 영어회화학원을 다녀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4학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외국 친구들과는 잘 지낼까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곳에 온지 8개월여.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지만,
“엄마, 한국말로 배우고 싶어. 수업 내용은 재밌는데 이걸 한국어로 배우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어”
하며 학교 가는 걸 좀 부담스러워하던 녀석이 겨울이 지나자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다
“예전보다 수업이 잘 들려?”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하긴 처음에 와서 사회시간에 그리스에 대해 배운다고 해서 애정하는 신화를 배우는 줄 알고 들떴던 녀석에게 그리스 정치형태만 들입다 영어로 가르쳤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독서를 하고 퀴즈를 풀면 포인트를 따는 A-R제도가 있는데 일정 포인트를 따면 한 쿼터(3개월)에 한번씩 메달을 준다. 큰 애도 친구들처럼 이 메달을 참 따고 싶어했다.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고 퀴즈를 풀어 포인트를 차곡차곡 따더니 드디어 이번 쿼터, 3쿼터에 메달을 땄다.
한반에 친구들이 고작 13명. 그중 여자애들은 6명 남짓. 한국 여자애 둘. 일본 하나. 중국 하나. 프랑스 하나. 미국 하나. 아무래도 동양 애들끼리 친하게 지내는데, 한국 친구와 일본 친구와 제일 친하다. 여자 셋은 사실 좀 힘든 조합이라 그동안 알력(?)다툼이 좀 있었으나 그래도 3쿼터가 끝나니 서로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번주가 방학이라 고대하던 파자마 파티를 해줄까 하고 친구 엄마에게 연락하니 친구 엄마가 주중은 안 된다며 어제 즉, 일요일에 자기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 딸은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인 친구, 그 친하다는 일본 친구네에서 외박(!)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 친구와는 몇번 파자마 파티를 한 적이 있지만 일본 친구네에 보낸다니 나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ㅋㅋ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밥 먹으면 그릇은 설겆이 통에 넣고, 놀고 나면 정리도 하고 그래”
일본인들은 폐끼치기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몇번 다짐을 해두었다. 더불어 얼마전 아이들과 영화 <말모이>를 보았는데 친구 가족에게 민감한 이슈 “일제 시대”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ㅋㅋ 역사는 그러하지만 그들의 조상이 그런 것이고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바보야? 그런 얘길 왜해? 근데 엄마 우리반에 이토 유*토라는 남자애가 있는데 걔는 이토 히로부미의 자손일까?ㅋㅋ”
“세상에 김씨가 한 집안만 있니? 이토도 얼마나 많을텐데”
우리의 염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아이는 전에 외할아버지와 함께 공부하려고 산 <일본어 첫걸음>이라는 회화책까지 들고 신나서 집을 나섰다. 친구네 아파트 문 앞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돌아서는데, 친구 가족과 신나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왠지 지난 8개월여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영어를 쏼라쏼라 못해도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친구들과 잘 지내길 바랬는데 딸내미는 스스로 잘 크고 있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래서 그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왠지 오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중에 친구 엄마가 보내온 사진과 문자를 보니, 밥도 잘 먹고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영화도 보고, 친구 엄마에게 한국말도 가르쳐주고 우리애도 가져간 책으로 일본말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어와 한국어에 같은 낱말이 있는 걸 발견하고 친구 가족과 아주 재밌었다고 했다.
“엄마, 가방이 일본어로도 가방이야!!”
아이들이 국적과 상관없이 어른들보다 훨씬 쉽게 친해지는 걸 보면 참 마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