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행히 휠체어에 앉으셔서 어제부터 병원 정원에도 나오신다는 소식을 썼었다. 어제부터 물리치료도 받으며 걷기 연습을 시작하셨다.
뇌출혈로 부모님이 아팠던 사촌 오빠가
“뇌출혈 이후에 치매가 심해지는 경우가 있어. 자주 말 시켜드리고 뇌를 쓰게 해야 해”
라고 전화로 알려줬다.
나는 오늘 병원 정원 벤치에 엄마와 앉아
“엄마, 40에서 7씩 빼 봐” 하고 물어봤다.
젊은 시절 고등학교 수학, 화학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기억력이 나빠져서 치매검사를 받아도 숫자 계산만큼은 기가 막히게 했다. 몇달전에 요양 등급을 받으려고 검사를 받을 때도 검사원의 같은 질문에
“40 33 26 19 ..”
하도 거침없이 대답을 하고 혼자 목욕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니 결국 국가 지원이 나오는 요양등급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나의 질문에 엄마는 잠시 멍한 얼굴이 되어 답을 못한다.
나는 아주 쉬운 셈을 물어봤다.
엄마. 10빼기 3은 뭐야?
응….?
그럼 10 빼기 5는 뭐야?
몰라.
엄마 손으로 해봐 손가락이 10개지.5개 빼니 몇개 남아?
5개.
맞았어.
그럼 2+3은 뭐야?
몰라. 자꾸 묻지마. 그냥 재밌는 얘기나 하자. 집에 가서 우리 커피나 한잔 하자.
엄마 병실에 커피가 어딨어?
여기 병원이니? 집 아니야?
…..
엄마는 이 곳이 병원이고, 뇌출혈로 입원했다는 것을 여러 번 말해줘도 잘 입력이 안된다.
엄마 영어로 손이 뭐야?
손? 몰라.
젊은 시절 유학 가서 영어로 논문까지 썼던 엄마는 손이 핸드라는 것도 잊으셨다.
엄마 주기율표에서 H가 뭐야?
H가 H이지 뭐긴 뭐야..
초기 치매약을 드시면서도 뇌출혈 전까지 원소 주기율표는 기가 막히게 외우고 있었는데, H가 수소인 것 뿐만 아니라 주기율표 구석에 있는 것도 물어보면 대답하셔서 손녀들의 박수를 받았는데, 엄마의 뇌는 어떻게 된 걸까.
뇌출혈이 있으면 인지 장애가 심해지는 것은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서서히 회복되기도 하고 더 심해지기도 한다고..
중학교 때까지 내가 수학이나 과학, 영어를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주던 엄마. 방학이면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촌을 두셋 모아 같이 수학 문제집을 풀게 하던 엄마. 방정식이나 기하 문제를 쉽게 풀어 보여주던 엄마. 명동성당에서 국제 행사를 할 때 통역 자원 봉사를 하던 엄마.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안 계시다. 먹먹한 마음에 엄마가 2 더하기 3도 못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어릴 적 같이 엄마에게 수학과 영어를 배웠던 사촌언니들에게 보여주니
“그래도 심각한 부위가 안 다친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 재활치료 받으면 꼭 걸으실거야.” 하고 위로해준다.
수학을 잘하던 엄마는 내 앞에 안 계시지만 그래도 병원 정원 벤치에 앉아 하늘과 나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엄마는 계시니 다행이다. 엄마가 무사히 이 병을 견디고 다시 걸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