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맥가이버

by 스텔라언니

아빠는 못 고치는 게 없었다. 집안의 갖가지 공사는 늘 아빠 몫이었다. 해마다 나무로 되어 있는 마루에 니스칠을 하는 것도, 몇년에 한번씩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도 아빠가 하는 일이었다. 단독주택이라 마당이 있었는데 잔디를 깎고 물을 주는 일도 아빠 몫이었다.


사람을 사서 할 수도 있으련만 검소하고 부지런한 아빠는 늘 자기가 스스로 고치고 칠했다. 어린 시절 아빠의 모습 중 기억나는 모습은 늘 집안 구석 구석을 돌보며 무언가를 고치는 모습이다.


아빠는 집안 일을 잘 도와주는 편이었다. 새벽이 되면 엄마대신 전기밥솥의 버튼을 눌러 밥을 지었다. 마당을 쓸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 약수를 떠오는 일도 늘 하셨다. 가족끼리 산에 가면 라면을 끓여주거나 닭을 삶아 주셨다. 내가 어릴 때는 산에서 취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빠가 가끔 해주는 요리가 참 맛있었다.

아빠는 자취를 오래 해서 요리 하는 것을 그리 낯설어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에는 싸고 신선한 내장을 사다가 요리를 해먹었다고 했다.


엄마가 해주는 요리에 타박도 심했다. 아빠는 보기에 아름다운 음식을 좋아했다. 엄마는 프라이팬에 고기를 볶으면 귀찮아서 프라이팬 째 식탁에 올려놓곤 했다. 아빠는 나이가 들면서 음식 타박을 하지 않았다. 요즘은 요양보호사가 해주는 음식을 잘 드신다.


아빠는 인물이 좋았다. 여고에서 수학 선생님을 했었는데 별명이 로버트 테일러라는 미국 영화배우의 이름을 따서 “로버트 리”였다. 옷도 센스있게 잘 입고 예술적인 감성도 있었다. 나는 아빠의 감수성을 물려받았다. 성격은 좀 차분하고 내성적인 편이다. 낯을 가리고 마음도 여리다. 마음에 안 맞으면 가족들 앞에서는 팩하고 잘 토라지거나 성질을 부리시곤 했다. 엄마는 아빠의 그런 성격을 잘 받아주었다.


아빠는 나와 잘 놀아주는 친구같은 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출장을 다녀올 때면 신기한 문구류나 예쁜 스웨터를 사다주곤 하셨다. 그리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교복 블라우스를 아침마다 깨끗이 다려주셨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으면 내 앞에서 막춤을 추면서 응원을 해주셨다.


두 아이를 키우며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빠의 따뜻한 한 마디가 힘이 되었다. 아빠는 “자식 키우는 게 어려운 일이다”하며 내 등을 두드려주시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아빠는 내가 힘들까봐 두 아이의 육아를 힘껏 도와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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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아빠를 만날 때마다 핸드폰을 들이대고 동영상을 찍는다. 나중에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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