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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Jan 03. 2024

딸의 육아를 위해 30년 넘게 살던 집을 팔다

첫 아이를 낳고 1년 가까이 친정에서 지냈다. 나의 직장과 친정이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인이 직장인 남편은 출퇴근 왕복 시간이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우리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섭섭하게 여기고 만류하셨다. 그래서 1년을 친정에서 지낸 것이다. 돌이 지나고 육아가 조금 익숙해지자 우리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세 살이 되니 둘째를 낳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생명은 아쉽게도 그만 유산이 되고 말았다. 수정란이 착상도 하기 전에 사라진 것이다. 1년 정도 기다려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니 더 바빠질 것이다. 종종 아이를 맡기러 친정에 갔는데 이제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동해야 한다. 부담스러웠다.


 어느날  아빠는 친구모임에서 다녀오시더니 아파트가 살기 편하다며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구산동 집에 대한 애착이 있어 이사를 가는 것을 꺼려하셨지만 아빠가 강력히 원하시고, 나의 육아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동의하셨다. 워킹맘으로 고생할 나를 위해 30년 넘게 산 집을 팔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구산동 집은 단독주택이라 쉽게 팔리지 않았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16년 가까이 키운 반려견 래쉬의 거취도 문제였다. 아파트로 이사가면 래쉬를 집 안에서 키워야 하는데 가능할까


이미 노견이 되어 제대로 걷지 못하던 래쉬는 주인들의 걱정을 눈치챘는지 이사하기 두달 전 개천절 새벽에 하늘 나라로 떠났다. 구산동에서의 마지막 밤에 남편과 나는 큰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과 함께 잤다. 오랫동안 사신 집을 떠나자니 매우 섭섭하실 것 같아 곁에 있어 드리고 싶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오셨다. 처음 아파트 생활을 하는 부모님을 위해 저층이면서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준비했다. 부모님이 이사오시던 날 우리 4형제는 함께 이사를 도왔다. 부모님은 아파트 생활에 쉽게 적응하셨다. 엄마와 아빠는 매일 집앞 한강 고수부지를 산책하셨다. 그리고 4시에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큰 애와 놀아주는 것이 큰 낙이셨다. 저녁 식사는 보통 우리 집에서 하셨다. 엄마는 10여년간 당뇨를 앓더니 입맛을 완전히 잃으셨다. 엄마는 원래 요리에 취미가 있지 않았지만 나이가 드시니 음식 만드는 일을 매우 버거워하셨다. 그래서 아침, 점심은 간단히 드시고, 저녁은 우리 집에 와서 드셨다. 나는 평소에 육아를 도와주시는 부모님께 이렇게라도 보답할 수 있어 좋았다.


 부모님은 따뜻하고 살기 편한 아파트 생활을 금새 좋아하셨다. 앞집에는 부모님 연배의 노인 부부가 살았다. 엄마와 앞집 할머니는 친해져서 종종 함께 아파트 정자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집 바로 앞에 성당이 있어 엄마는 자주 미사에 참석하셨다.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함께 미사에 가곤 했다. 집 근처에는 대형 마켓과 반찬 가게가 있어 편리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큰 애가 다니는 유치원이 있어서 부모님은 아이의 등하원 때 항상 마중을 나오셨다.

큰 애 유치원 졸업식날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장점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이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번 종로에서 친구모임을 했고, 엄마는 한달에 한번 압구정동에서 동창 모임에 참석했다. 구산동에서 가면 퍽 먼 거리를 가깝게 갈 수 있어 좋아하셨다. 춥고 관리하기 힘든 구산동 단독주택에 노인 두분이 사시는 것보다 아파트로 이사오신 것은 여러 모로 잘 한 결정이었다. 부모님은 예전보다 더 활기차시고 건강해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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