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선산에 모신 날, 가족을 대표해 오빠가 친척들 앞에서 소회를 전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살았던 막내인 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는 말을 듣고, 조용히 앞으로 나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떠난 후 계속 마음속을 맴돌던 생각을 전했다.
“제가 가진 좋은 것들, 대부분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아요.”
정말 그렇다.
기도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시며,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살게 해주신 분.
음악을 사랑하셔서 집 안 가득 좋은 음악이 흐르게 해주신 분.
수다스럽고 산만하던 막내딸에게 집중력을 길러주고 싶다며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하신 분.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기 전,
마루에 큰 달력 종이를 깔고 오선지를 그려 도레미파솔라시도 위치를 알려주셨다.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책을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나도 책을 좋아하게 됐다. 엄마는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 『소공녀』,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하이디』를 “이건 정말 재미있는 책이야!” 하며 내게 건네주시곤 했다.
영화도 좋아하셔서
일요일 낮이나 주말 저녁이면 함께 티비에서 하는 고전 영화를 보곤 했다.
『로마의 휴일』, 『벤허』, 『애수』,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영화 속 감정과 대사, 음악을 기억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릴 적 수영을 배우신 엄마는
나에게도 수영을 가르쳐주셨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내 소중한 취미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부모님은
화려한 여행은 즐기지 않으셨지만
자주 나를 데리고 산과 바다로 다니셨다.
그땐 싫었지만,
지금 내가 자연을 좋아하게 된 건 분명 그 시절 덕분이다.
엄마는 중고등학교에서 수학과 화학을 가르치셨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쉬운 문제를 여러 번 풀어 정확히 이해하도록 유도하시며 수학이 ‘재미있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셨다.
내게 백과사전 찾는 법을 처음 알려주신 것도 엄마였다.
가나다 순만 알던 어린 나에게 모음의 순서와 받침에 따라 단어를 찾는 법을 알려주시며 지식의 세계를 여는 문을 열어주셨다.
영어 회화도 마찬가지였다.
유학 시절, 문법은 알아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학생인 나에게 5년간 영어 회화를 배우게 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음악 못지않게 언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피아노 선생님 댁 계단에 있던 울퉁불퉁한 지구본,
그걸 보며 산이 많은 지역을 설명해주시던 엄마.
초등학교 입학 후 내 방에 붙여주신 세계지도와 한국지도.
“지도를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사회 공부가 쉬워진다”는 말.
그 말씀 덕분에 나는 지금도 여행과 외국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엄마에게 배웠다.
엄마는 나이, 지위, 배경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할 줄 아는 분이셨다.
시장에서 단골 상인들과 웃으며 이야기 나누시고,
딸의 무서운 피아노 선생님과도 친구처럼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분.
엄마가 돌아가신 뒤 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엄마를 기억하며 함께 울어주셨다.
엄마의 그런 태도는,
아마도 예수님의 사랑에서 배운 것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
나는 그런 엄마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쓰다 보니, 엄마에게 배운 것이
차고 넘친다.
이 글이 어쩌면 엄마 자랑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엄마를 떠나보낸 자식의 황망한 넋두리로
그저 따뜻하게 읽어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