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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Jan 08. 2021

옛집에 대한 추억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단독주택에 살았다.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겨울을 제외하곤 사시사철 꽃이 피었다. 감나무와 대추나무에 열매가 잔뜩 달려 가을에는 작대기를 들고 따서 먹곤 했다. 감잎을 말려서 감잎차를 끓여마시기도 했다. 아빠는 주말마다 잔디를 깎았고 우리는 수시로 개똥을 치웠다.

 어렸을 때부터 개를 키웠다. 당시에는 개를 지금처럼 키우지 않았다. 식구들이 먹고 남은 음식에 밥을 비벼서 주었다. 비오는 날이 목욕하는 날이었다. 그래도 한번도 묶어서 키운 적은 없었다. 예방 주사 한번 맞지 않아도 우리 집 개들은 건강했다.

나는 마당에서 자주 놀았다. 모래와 풀을 이용해서 소꿉놀이를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마당에서 놀던 모습을 부모님은 사진으로 남겨주셨다. 멀리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집이 꽤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아빠가 결혼 후 19번의 이사 끝에 마련한 우리집은 서울 변두리 동네의 이층짜리 양옥집이었다. 우리는 우리 집을 정말 사랑했다. 1층에는 안방과 부엌, 넓은 거실과 작은 내방이 있었다. 안방은 해가 잘 드는 남향이었다. 거실에는 어린 시절 겨울이면 연탄 난로가 있었다. 난로 위에서 보리차도 끓이고 고구마도 구워먹던 기억이 난다.

 구석에 있던 작은 내방은 고3까지 내가 썼다. 동향이고 웃풍이 센 방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방을 사랑했다. 내 방에 누워 가을날 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것이 생각난다

 이층에는 언니 둘이 쓰는 방과 오빠 방이 있었다. 그리고 거실이 있었다. 거실 앞쪽에는 넓은 베란다가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 방에 함부로 막 들어가서 놀 수는 없었다. 의대에 다니던 오빠가 학교에 가면 나 혼자 오빠 방에 들어가 각종 의학 서적들에 나온 사진들을 보던 기억이 난다. 세상엔 참 징그러운 피부병이 많구나. 몇몇 사진은 보기도 싫었다.

방학이면 사촌들이 엄마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러 왔다. 나는 내 또래 사촌들과 방학마다 같이 문제집을 풀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가끔 시내에 나가 교보에도 가고 영화도 본 것 같다.

 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시내 중심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시내에 살기도 처음이었고, 외출해도 금방 집에 올 수 있어 좋았다.

아파트는 웃풍이 없고 바로바로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시집 오기 전까지 살던 집은 겨울이면 두꺼운 스웨터를 입어야했고, 더운 물을 쓰려면 보일러를 올리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그 집에서 첫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를 낳고 1년간 친정살이를 했다. 첫째도 나처럼 마당을 뛰어다니며 자랐다. 우리가 키우던 개를 쫓아다니며 좋아했다.

내가 둘째를 갖으려고 하자, 너무나 사랑했던 집을 팔고 부모님은 9년 전 우리 아파트 단지로 이사오셨다. 이제는 아파트가 너무 편하다며 다시는 단독주택에 살지 못 할 것 같다고 하신다. 늘 수리할 게 많았던 우리집, 부모님은 집 건사 하느라 바쁘셨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밤이면 구산동 우리집 꿈을 많이 꾼다. 꿈 속에서 그 집은 아직도 우리 집이다. 가끔 차를 몰고 옛동네를 간다. 물끄러미 담장 밖에서 한참 우리집을 보곤 한다. 이제는 못 들어가는 우리집.

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집에 대한 추억을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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