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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Jun 16. 2021

아빠의 등어리


아빠가 일주 넘게 입원 중이시다. 올해로 아흔이 넘으신 아빠는 소변이 잘 안 나와서 고생하시다가 결국 지난 주 토요일에 오빠가 일하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지난 주 토요일 나는 오랫만에 후배와 광화문 근처에서 전시를 봤다. 혼자만의 즐거운 외출에 마음이 흡족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입원을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카톡을 오빠에게 받았다. 나는 그 때 광화문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집에 가기 전에 친정에 들려야 할 것 같았다. 아빠가 입원하는 병원은 간호사가 간병까지 해주는 곳이라 가족도 출입이 어렵다. 입원하시면 한동안 아빠를 못 볼텐데 왠지 오늘은 꼭 아빠를 봐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그리 살가운 딸도 아니었는데 왠지 오늘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정에 가보니 아버지는 변기를 붙잡은 채 화장실 바닥에 앉아 계셨다. 누가 부축하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허리 수술까지 했던 엄마가 아빠를 들 수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셨다. 아빠를 가까스로 들어 마루 바닥에 눕혀드렸다. 오빠와 큰 조카가 와서 아빠를 부축하고 응급실로 가기 위해 차를 타러 가는 뒷모습을 보자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아빠가 예전에 해줬던 얘기가 생각났다. 경기도 시골 출신이던 아빠는 형제 중 처음으로 서울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1940년대였다. 학생들에게 밀가루를 배급으로 나누어주었는데 중학생인 아빠 생각에 밀가루를 그냥 가져가는 것보다 국수를 뽑아가면 집에 줄줄이 있는 동생들(자그만치 7명)도 잘 먹고 들고 가기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밀가루를 국수뽑는 가게에 들고가 국수로 만들어 가져갔다는 것이다.


아이를 열 두명이나 낳았던 나의 친할머니는 늘 배가 아프다고 했다. 아빠 말씀으로는 할머니가 편히 누워주무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밤이 되면 수많은 아이들의 옷과 양말을 꿰매고 앉아 계셨다고..


아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이 일본으로 대학 간다고 해서 1947년 아빠도 무려 밀항을 해서 일본에 갔다. 일본에서 의대 가서 맨날 배 아프다는 할머니를 고쳐드리겠다고. 의대는 못가고 알바하면서 고학생으로 공대를 졸업했다.


부모님께  건강하다고 편지보내도  믿고 걱정하실까봐 20  동네 사진관에서 웃통 벗고 팬티만 입고사진찍어 보냈다고 한다.

팬티만 입고 찍은 아빠 사진. 아랫부분은 편집했다 ㅋㅋ


“어머니 아버지 저 정말 건강히 잘 있습니다”


사진찍어준 일본 사진사가 감동받아 사진값을 안 받았다고 그리고 자기 아들은 찾아 오지도 않는다면서 나도 조선에 태어날 걸 그랬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아빠가 팬티만 입고 찍었던 사진이 아직도 친정에 있다. 얼마전 아빠가 식사를 잘 못하시고 말씀도 잘 못 하실 때, 내가 그 사진을 보여드리니 내가 왜 이 사진을 찍었냐면, 하시면서 사진에 얽힌 사연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아빠가 일주일 전 오빠와 조카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차에 타실 때 나는 자꾸 20살 아빠가 팬티만 입고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그렇게 건강하고 씩씩했던 청년이 이제 세월이 지나 부축을 받고도 잘 걸을 수 없는 노인이 된 모습을 보니, 아빠의 등어리가 참 애잔하게 느껴졌다.


엄마도 팔순이 넘으셨으니 이제 두분 다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시다. 오늘 아침 아빠가 이번 주 수요일에 퇴원하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간병인을 쓰고 형제들도 번갈아 들여다보겠지만 앞으로 두 분이 어떻게 지내실지 아직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도 그 길을 걸을 것이며, 여름에 푸르던 잎도 붉게 변해 떨어지는 걸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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