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소중하다
오늘도 아이를 통해 성장했다
스무 살 성인이 된 나의 아들은 참으로 열심히 산다.
되도록이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그 시간에 새벽연습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가량한다.
그리고는 새벽 조깅을 하러 간다. 요즘같이 가을인가 초겨울인가 하는 날씨에는 해가 뜨지도 않아 많이 어둡고 더군다나 시골인 우리 동네는 가로등도 켜지지 않는 시간이다. 핸드폰 불빛을 친구 삼아 열심히 달린다.
4시 30분에 일어나려면 늦어도 밤 10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하루 연습을 끝내고 나면 핸드폰이니 친구들 문자니 놀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그 유혹을 뿌리치고는 스트레칭 한판하고 잠자리에 든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나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나는 항상 그것이 궁금하였고 그래서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 수가 있어?라고 했더니 아들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저는 제 인생이 아주 소중해요.
아. 그렇구나. 내 인생이 소중하다. 나에게는 그 말이 뭔가 알 수 없는 외국어를 들은 것 같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무슨 뜻인지는 알겠으나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며칠을 입에서 웅얼웅얼해 보았더랬다.
내 인생이 소중하다 내 인생이 소중하다 이 말은
나도 내 인생이 소중했나?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이 소중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한 번도 내 인생이 소중한지 아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첫째를 딸은 낳은 엄마가 둘째인 나를 임신했을 때 점집에 갔다고 한다. 둘째는 꼭 아들을 낳아야 했기에 혹시 점쟁이가 딸이라고 하면 아기를 지우려고 했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점쟁이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원망해야 하나 점쟁이는 나를 아들이라고 했고 그 덕에 나는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낳아보니 딸이었으니 엄마의 좌절과 할머니의 분노는 근 40년 넘게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왜 태어났는지 무얼 하러 태어났는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나는 조금은 행복한 아이가 되었을까? 기억에 없지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는 본인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항상 나에게 화풀이를 하시곤 했는데 엄마는 항상 나를 괜히 나았다고 하셨다. 딸인 줄 알았다면 안 낳았을 거라고도 했다.
자주 들어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충격적인 말이어서 그런지 이 말은 오랜 기간 나를 지배했다.
나는 과히 착한 딸은 아니었다. 엄마한테 이쁨 받으려고 온갖 착한 일은 다하다가 한 번씩 이성을 잃으면 나도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해대었다. 밑에 남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언니는 왜 귀한 존재인지 같은 딸인데 나는 왜 귀한 존재일 수 없는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10대를 반항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를 해보면 나는 E 성향이 80프로가 넘게 나온다. 나의 출생의 우울을 감추려 아마 나는 최선을 다해 밝게 살았던 것 같다.
꽁꽁 잠가놨던 나의 우울을 슬픔을 알게 된 건 아이와 함께 유학을 나와서이다. 멀리멀리 나와서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엄마를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으로 여기며 자라는 내 아이를 보니 두려워졌다.
먼지 투성이인채로 여기저기 긁힌 맑지 않은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보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상담사를 통해 내 마음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혼자 있는걸 절대 못하던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야만 행복했던 내가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게 행복해졌고 그 시간이 어색하지 않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여야만 갈 수 있던 낯선 곳도 아이가 미리 길만 잘 알려주면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다닐 수 있게 됐다.
어느 날은 아이가 알려준 길이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말 그대로 멘붕이 온 나는 식은땀 흐르는 것을 닦아내고 구글 지도를 켰다. 되든 안되든 가보리라! 빙빙 돌고 여기저기 헤매긴 했지만 목적지까지 잘 찾아갔다. 그날은 정말 잊지 못할 하루이다. 그 뒤로는 아이가 길을 설명해 주려 고 하면 나는 당당히 말한다.
주소만 알려줘~내가 찾아갈 수 있어!!
이제는 안다. 아이가 했던 말
제 인생이 소중해요
아이와 함께했던 유학생활이 정말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었다. 요즘도 그러하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은 나 스스로를 잘 지킬 줄도 알고
잘 회복시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소중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