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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Jan 20. 2024

08_사랑은 머물지 않으며

   ㅣ인생은 마르지 않는다.*ㅣ


   시간은 없는데 평일 저녁에 급히 만나야 하는 문제는.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공항에 8시 15분까지는 가야 하니 (6시가 아니고) 5시 45분에 만나자고 한다. 이렇게 15분 단위로 약속을 잡고는 통상 멀더는 6시 10분 정도에 나타난다. 상대방의 시간의 흐름이 나와 달라서 짜증 난다면 만나지 말거나 도(道)를 닦아야 한다. 결국 6시 45분에 나타난 멀더는 머리모양이 짧은 스포츠형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났는데 급하다고 하니 서점 안에 델리에서 간단히 저녁을 우면서 얘기하자 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고는 굳이 다른 데로 가자고 한다.  다른 데는 시청방향으로 조금 내려가서 신문사 빌딩 1층 샌드위치 가게였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샌드위치 가게였는데, 나에게는 교보문고 안에 있던 델리 메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멀더가 주문하는 동안 창밖을 보니 복원된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텍사스(TEXAS)라는 간판 보였다. 순간 소름 돋았다.  21세기 서울 중심에 한국 전쟁 전후에나 출현했을 미군 술집을 연상케 하는 곳이라니. 내가 그 간판을 보고 소름 끼치듯이 몸을 털고 있을 때 멀더가 샌드위치를 들고 왔다. 내가 아는 삼각형 샌드위치가 아니고, 빵이 안경집처럼 짧고 두꺼웠다. 빵을 집어 들자 그 안에 욱여넣어둔 야채들이  빠져나오려 한다.  "아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하니, 멀더는 본인이 좋아하는 메뉴 시키고 미안했는지 '그럼 푸라이즈 먹겠냐'라고 한다. "푸라이즈? (그건 또 뭔가?)" 하고 보니, 정말 메뉴 이름이 그냥 Fries다. '아마... 감자튀김...' 그것은 어찌하여 자동으로 '감자' 튀김일까? 이것도 혼잣말이었지만 멀더는 "잘 모르겠어요" 하며 대답을 대충 하는 것을 보니 생각이 다른 데 가있다. 그제야 그의 앞에 놓인 MP3를 발견했다. 사연많은 사과사 MP3다.(한국 중소기업이 출발점이라는) "4기가 바이트예요"하고 자랑한다. 내가 '오...' 하니까 누가 사줬다고 한다. 급히 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그 누구는 누구?


     다행히 한국 사람은 아니었다. (왜 다행이라고 하는지는 루이스 편에서) 멀더가 한국에 2년 더 있으면서 놀러 온 친구는 나나 톰이 알게 되었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식사도 같이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 MP3에 대해서는 가는 날까지 몰랐다. 26살 청춘의 연애 문제...(너도 마침내 사랑의 덫에 걸렸구나!) 상담이 필요해서 나를 급히 부른 것이다. 멀더가 "이 친구가 나하고 결혼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했을 때, 나는 컥- 소리를 냈다. 오이 피클이 목에 걸린듯 했다. (내 코가 석 자다) 결혼 상담이라면 부모님 하고 의논해야 되는 거 아님? 샌드위치 중간에 들어있던 콘은 바닥에 떨어져 튀어갔다. 이제 내가 제어할 사안은 아니다.

     같은 대학 동문이란다 좋은 사람이란다. 더군다나 대학 다닐 때 잠깐 특별한 감정이 오가기도 했단다. (레퍼토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스토리다.) "그런데 매력이 없어요" (어쩜 이렇게 똑같은 전개) 네가 무슨 여지를 줬으니 이역만리 최신형 MP3를 들고 왔겠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20대를 통과하고 30대가 되도록 지겹게 주고받은 연애 문제의 말을 외국인에게까지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매력(charm)을 이해하고 쓰는 건지 확인하고, 너(you)가 눈이 높네라고 내가 말했다. 눈이 높아요? 어떻게요? 이렇게? 멀더는 갑자기 흥분해서 허리를 꽂이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나를 꼬나본다. 푸하하. 나도 영어 관용어를 조금 알지만 재깍재깍 생각나지 않으니, 알고 있는 단어로 풀어줄 수밖에... 그 친구가 좋은 사람인데 뭔가 부족해?라고 다시 물으니, "네 뭔가..." 한다.  

    그러니까 '네가 눈이 높은 것'이라고 하니... 제이슨 '음... see eye to eye?' 한다. 그건 무슨 말이야? 하니 제이슨도 내 방식처럼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한다. (뭔가 이심전심인 듯?)  아 그런 뜻은 아니고... 그 친구가 에게는 완벽하게 차지 않는다. (아 관용어의 지이다.) 너네가 좋아하는 단어 '원 헌드레드 퍼센트'로 말하자면 "100%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고" 그랬더니 멀더가 " 아 네 리그에 안 맞는다고요?" league? 비로소 생각이 났다. 바로 그 말이야, out of your league! 네 바로 그거예요 한다. 빛이 지구를 수천 바퀴 돌았겠지...

 

   ... 봄을 타는 건가? 그 말은 계절의 영향을 받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아니란다. 어찌 되었든 그 친구에게 너의 마음을 정확하게 말하라고 했다. 지금? 오늘요?. 아니라면 빨리 얘기해야지. 그런 것이 이른바 희망고문이라니까. 아 괜한 말을 또 꺼냈나 싶었지만, 제이슨은 지금 나의 조언이 절박하다. 그래서 고문(a turture)을 먼저 알려주니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공항은 바로 그 친구를 배웅하러 가는 길이다.




     그날 저녁에 희망고문을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 찾아보니, 이미 선구자(?)가 정확한 뜻을 잘 설명해 놓았다. The best thing you can do to someone who loves you is to love that person. But if the situation is not possible, you shouldn't give him any hope. Because that small, tiny hope might be a torture to him, that's why it called, 'Happy torture'


   

  

*어느 카피라이터의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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