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의 단상(斷想)

기미년 가뭄도 견뎠는데 코로나도 견딜 수 있지.

by 정연우



커피 한잔의 단상(斷想)

기미년 가뭄도 견뎠는데 코로나도 견딜 수 있지

가뭄이 여러 날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는 해에는 하늘받이 논들은 어쩔 수 없이 밭작물을 심었는데 쑤시나 서속(黍粟; 기장 또는 조)을 심었다. 서숙은 서속(黍粟)의 전라도 방언인데 가뭄에도 견디고 수확도 되는 밭작물 중에 대표적이고 주식대용으로 먹을 수 있어서 다랑지 논에다 심었다.

돌아보면 기미년(1919년) 가뭄만 아니면 된다고 하면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일본정부가 자국의 쌀값 안정을 위해 조선에서 나온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면서 농사를 지어도 곳간은 비고 백성들은 굶주렸다. 그로 인해 1918년 무오년에 폭동이 일어나고, 쌀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되에 11전 하던 것이 3배이상 올라 36전을 줘도 살 수가 없었다.

백성들은 쌀 한톨없이 기장에 서속가루를 섞어서 먹거나,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먹으면서 겨우 겨우 살았다. 산골짜기 마을에서는 기근으로 살아있는 아이들을 땅에 묻는 일도 벌어졌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기미년에 가뭄이 들면서 전국토가 펄펄 끓었다. 그나마 있던 풀포기마저도 말라 죽었고, 소들은 혀를 빼고 헉헉거렸다. 닭도 알을 낳지 않았다.

어떻게, 무엇으로 살았는지 알 수 없던 기미년에 한해(旱害; 가뭄)는 그야말로 곡식도 사람도 동물도 모두 말라 죽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가뭄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기미년만큼은 아니라면서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기미년 가뭄에도 비는 왔다는 말이 있다. ‘그것도 비냐? 면서 뭔가 시원찮을 때 비아냥거리면서 쓰는 말이다. 그렇게 비라고도 할 수 없는 안개비가 기미년에 내렸는데, 안개비는 구름에 가려서 내리는 비라서 밭작물에는 내려도 소용이 없는 비였다. 안개비로 인해 낮이 되면 더 더워질 뿐, 안개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밭작물은 목도 축이지 못하니 오나마나 한 비였다. 토방에 먼지도 안 잠길만큼 안개비가 내렸던 기미년의 가뭄은 그렇게 최악의 한해로 기억된다.

요즈음 시국이 코로나 19로 세상이 어지럽다. 그러나 돌아보면, 혹여 우리가 상처를 준 것이 있는 것은 아닌 지 그래서 그것들이 아파서 내는 한숨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것은 아닌 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어디에서 피가 나는지, 얼마나 다쳤는지를 봐줘야 한다. 창문이 쨍그랑하고 깨지기 전에는 그저 유리 창문이지만, 깨지고 나면 그것은 창문이 아니라 무기가 된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 19를 대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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