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르코 수도원의 <성모영보>
원체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피렌체이다 보니 필요한 것은 ‘선택’이었다. 어디를 가야 할까. 짧은 시간, 그리고 계획된 일정. 그럼에도 산마르코 수도원은 꼭 가고 싶었다. 어쩌면 그건 동화 속에서 만난 어떤 기억과의 만남과도 같았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말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 그래서 늘 기억 저편에 멎어 있는 그 풍경. 그런데 새삼 그 ‘성모영보’를 만나고 싶었다. 기억을 새롭히고 싶었다. 또한 그 오래된 도미니코수도원의 자취도 느끼고 싶었다. 수도자들의 독방마다 그려진 안젤리코의 성화들. 고독 속에서 고백한 그들의 믿음을 느끼고 싶었다.
수태고지. 성모영보. 이 낯선 단어들은 신약성경에서 ‘성모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을 가리킨다. 이 순간을 개신교에서는 여전히 수태고지라고 부르고, 정교회에서는 성모 희보라고 한다. 그 기쁜 소식의 주인공 아이가 바로 예수였다. 처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기를 낳은 것이다.
처녀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천사의 예고는 신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신다는 기별이었다. 그때 그 소식, 말도 안 되는 그 전언에 처녀 마리아가 응답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놀라운 그 순간, 천지창조 이후 또 하나의 세상이 열렸다. 말 그대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아담의 죄로 끊어졌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마리아의 순종으로 새롭게 시작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사람이 되어 이 땅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믿는 이들에게 이 순간은 가슴 떨리는 카이로스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초기부터 이 순간을 귀하게 여겼다. 특히 <야고보의 원복음서>가 전해주는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예수가 자랐던 나자렛에서는 마리아가 살던 때부터 있었던 우물터에 천사의 발현을 기념하는 성당을 짓고 이 천사의 이름을 따 '가브리엘 성당'이라고 불렀다.
우물가에서 천사를 만난 마리아를 정교인들은 성당의 이코노스타시스에서도 뵐 수 있었다. 지성소와 신자들의 자리를 구분하는 성화벽에 그 순간처럼 천사와 마리아가 함께했다.
중세 화가들 역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르네상스 화가들은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이 순간을 경이롭게 그리곤 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보티첼리도 저마다 이 주제를 화폭에 담았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영보>였다. 그는 바로 옛 산마르코 수도원에 살던 수도자였다.
정쟁에 휩싸여 베네치아로 추방되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가 1년 만에 피렌체로 복귀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산마르코 수도원을 새로 지은 것이었다. 무려 300억 원을 투자한 대공사였다. 특히 수도원 내부는 자신의 고향 사람이자 이 수도원 수사였던 프라 안젤리코에게 맡겨 가장 장엄하게 장식하도록 했다. ‘천사 같은 수도형제’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선한 사람이었던 안젤리코는 한없는 기도 가운데 40여 개가 넘는 수사들의 독방과 성당 곳곳을 꾸몄다.
너무나 오래전부터 봐 온 풍경이라 별 감흥도 없이 기억 깊이 있었던 이 장면이 문득 되살아났다. 나이 듦의 드문 미덕이라고 해야 할까. 식상하다며 묻어둔 것들이 아주 가끔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피렌체를 간다고 하자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영보>도 그렇게 다가왔다.
아침, 아직은 한적한 산마르코 광장에 내렸다. 자꾸 수도원이라고 썼지만 사실 이곳은 이제 박물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산마르코 박물관이다. 회랑에 들어서서 당장 도미니코회 수사로 순교한 베로나의 성 베드로의 모습을 만났다. 그의 표정은 예사롭지 않은데, 심지어 정수리에서는 피가 흘러 몇 올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이마로 내려오고 있었다. 한 손에 붓과 책을 든 그의 다른 한 손 위로는 칼이 있는 것인가? 바로 그 손이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쉿’ 하고 침묵을 요구하고 있었다.
침묵이란, 그토록 비장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의미일까? 침묵이 그토록 신비를 담지한 의미의 숲이라는 조언일까? 왜 고작 ‘침묵’을 얘기하는 성인의 초상이 이토록 살벌하기까지 한 것일까.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침묵이 무거운 느낌으로 다가오기는 했다.
도미니코수도회는 “진리를 관상하라 그리고 전하라(contemplari et contemplata aliis tradere)”는 가르침을 살아왔다. 밤낮으로 기도하며 공부하여 진리를 알고, 이를 설교하고 가르치라는 뜻이었다. 수도회의 사명에 목숨을 걸 만큼 열정적이었던 이들의 자세에서 절체절명의 느낌이 전해졌다.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바로 그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영보’가 있었다. 유리를 씌워두는 바람에 세월에 닳고 수도자들의 기도에 젖은 그런 아득한 느낌은 사라져버렸다. 아쉬웠다.
오래전 마리아는 실을 잣다가 천사를 만났다고 한다. 우물에서 물을 긷는 중이었다고도 한다. 중세에 이르면 책을 들고 있기도 한다. 프라 안젤리코가 산마르코 수도원의 한 방에 그린 또 다른 <성모영보>에서도 마리아는 책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성모영보>에서는 고요히 두 팔을 모두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전폭적인 수용의 자세로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천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고 마리아는 "FIAT"으로 응답했다. "네." 한마디였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듣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소식이어도 들을 귀가 없다면 별무소용이다. 아무리 신랑이 와도 함께 신방으로 갈 수 없다면 기다림은 허사가 되는 것 아닌가. 성경에는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들의 비유도 있다.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이 길어져 어둠이 내렸다. 밤을 밝히기 위해 불을 켜야 하는데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온 처녀들이 있는가 하면 금세 불을 꺼뜨리고 만 처녀들이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 “기름을 좀 나누어 다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렇게 하면 우리도 너희도 제대로 불을 밝힐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기름을 사오라고 거절한다. 신랑이 왔을 때 기름을 사러 간 처녀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신랑은 구원이고, 신랑은 삶 자체다. 누구에게 희망을 나눠달라고 할 수도 없고 삶을 같이 책임지자고 할 수도 없다. 온전히 자기 몫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의지로 풀어나가고 책임져야 한다.
<성모영보>는 그 놀랍고도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의 자세를 보게 한다. 삶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는 자기 삶의 주인이다. 안젤리코는 아주 유순하게 마리아를 그렸지만 사실 성경이 전하는 그녀는 결코 유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수를 가진 몸으로 찾아간 그에게 마리아의 사촌 엘리사벳이 축하를 건넸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마리아는 인류에 회자되는 노래 마니피캇으로 응답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참 당차고 역동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수동적으로 운명에 이끌려간 사람이 아니었다. 말씀이 그에게 왔을 때 그는 준비된 사람처럼 이를 받아 안았다.
그렇다고 마리아가 맹종하는 신앙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말이 안 되는 소식 앞에 그녀도 묻는다. 난 아직 남자를 모르는데 아이를 가지다니요? 천사의 말이 그녀를 납득시킨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마리아의 신앙은 창조주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확신했다.
다시 고요해지는 시간, 산마르코 수도원의 이른 아침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직 여행자들의 발길도 드문 옛 수도원에 침묵의 환대, 기억의 환대가 밀려든다. 그저 그리로 들어간다.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문득 내 앞에도 천사가 계시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