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인 Jun 01. 2023

‘내사랑 못난이’, 너도바람꽃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꽃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꽃들에 대해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갖는다. 너도바람꽃은 유독 반응이 엇갈리기도 하는 꽃이다. 누군가 너도바람꽃이 안 이쁘다고, 못 생겼다고 했을 때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처음, 너도바람꽃을 만났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매서운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때로는 복수초보다 먼저 꽃을 피워 올리는 너도바람꽃은 눈 속에서 추위를 뚫고 피는, 꽃이라기에는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꽃잎을 가지고 있다. 혹한을 거치며 피다 보니 찢어진 꽃잎을 많이 보게 되는데, 꽃잎 안에 있는 두 개로 갈라진 노란색 꿀샘이 이 꽃을 금세 알아보게 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아직 찬바람이 불어오는 산자락에서 머리 위에 샛노란 화관을 빙 두르고 있는 우유빛깔 꽃을 만나면 물어보라. “너도 바람꽃이니?”

그런데 그 노란색 화관이 꽃잎이다. 꽃잎이라고 부르는 건 꽃받침이라고 한다. 왜 꽃잎처럼 보이는 것을 꽃잎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너도바람꽃, 천마산(2016. 3. 21.)


때로는 채 녹지 않은 눈길에서 너도바람꽃을 만나기도 한다. 혹은 이미 핀 꽃 위로 눈이 내리기도 한다. 뿌리는 단단하게 터를 잡았겠으나 꽃은 바람과 햇빛과 짐승의 발길에 채이기도 한다. 심지어 눈발에 찢기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꽃과 찬찬히 만나다보면 묻고 싶어진다. 넌 어떤 세계에서 온 거니. 얼마나 애를 쓰고 꽃을 피운 거니. 특히 역광으로 거의 투명하게 비치는 꽃잎에서 상처라도 보일라치면 이 작고도 여린 꽃이 씨앗으로부터 지난한 인내로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꽃을 피운 시간이 참으로 대견해진다. 

저렇게 찢어진 잎으로, 저렇게 휘어진 줄기로, 저렇게 그득한 빛을 머금고 어둠 속에서 제 목숨 피워 올리는 꽃을 보면 이쁘다, 사랑스럽다...감탄밖에 할 수 없다. 나는 꽃들의 분투로 찾아와주는 또 한 번의 봄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자격도 없이 봄이 차려주는 환희의 식탁에 초대를 받은 거다. 


너도바람꽃을 만나면 정말 못난 나보다 백 배는 더 멋진 꽃 앞에서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꽃이 온 길은 ‘꽃길’이 아니다. 꽃들은 어둠과 비바람 눈보라와 추위와 길고 긴 기다림으로부터 온다. 그 길 끝에서 우리 앞에 ‘꽃’으로 핀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못난이 너도바람꽃을 만나고 진짜로 못난 내 모습을 또 바라본다. 어둠과 길고 긴 기다림과 매일 만나는 눈보라 앞에 나는 너도바람꽃만큼 살았던가. 나라면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천마산에서, 세정사 계곡에서, 광덕산에서 봄이면 반갑게 만나는 너도바람꽃은 내게 여전히 못난이다. 애잔해서 더 마음이 쓰이는 ‘내사랑 못난이’


너도바람꽃, 세정사 계곡(2019. 3. 17.)




작가의 이전글 팔레르모 대성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