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라스 판타나사 수녀원 이콘들의 상처

때론 묻을 건 묻고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야 한다

by 이아인

묻어둘 건 묻어두고 종종 손을 봐가며 살아야 할 일도 있다. 볼 때마다 상처를 들추게 되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비잔티움의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살아가는 성당에서 너무나 상한 프레스코화들이, 혹시라도 성화를 훼손하고 약탈한 가해자들을 상기시켜 그들의 영혼을 갉아먹지나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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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663.JPG 이리도 환한 판타나사 수녀원


보통은 오스만 제국 시절 무슬림들이 사람의 생명은 눈에 있다고 생각해 긴 창으로 프레스코화의 눈동자를 훼손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나 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깊숙이 여행한 이가 이런 얘길 들려준다(패트릭 리 퍼머, <그리스의 끝 마니>).




오래된 프레스코화를 보면 성인의 눈이 날카로운 도구로 긁히거나 뽑혀 있을 때가 자주 있는데 회반죽 벽에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난 흰 구멍을 보고 있으면 내 눈마저 쓰라려온다. 그럴 때면 나이 많은 마을 사람이 터키인들이 저지른 성상모독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대개는 그 말이 맞을 것이다....이런 성상훼손은 그리스 여행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작은 성당의 벽에서도 이런 성상훼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텅 빈 안구를 가리키며 바실리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아!" 바실리오가 말했다.

"옛날에, 어쩌면 요즘에도 사람들이 회반죽을 파내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의 음식이나 포도주에 뿌려요. 주로 여자들이……."

"터키인들이 한 짓이 아니고?"

"터키인이요? 왜요?“

바실리오는 터키인의 성상훼손 이야기 같은 건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거야말로 마니가 얼마나 난공불락인지 보여주는 또 다른 예라 할 수 있을까? ....아마 포기하기가 어려운 관습도 있으리라.



마니는 미스트라스보다 더 깊숙한 곳이어서 터키인의 폭력을 피했을까? 판타나사 수녀원의 성화 훼손은 누구 때문일까. 무슬림 혹은 시간? 아니면 니코스 카잔자키스가 알려주는 것처럼 타이게토스 산맥의 안개 때문에?

그러나 패트릭 리 퍼머가 본 것처럼 성화에서 눈이 허옇게 긁혀있는 것은 무엇에 의한 것이든 폭력의 흔적이다. 그저 스쳐가며 잠시 바라보는 나도 쓰라린데 매일 그 안에서 기도하는 수도자들에겐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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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회의 이콘은 여전히 어렵다. 우선 엄격하고 경직되어 보이는 표현이 '자, 거기까지만! 더 이상은 다가오지 마라!'며 울타리를 친 것처럼 선뜻 다가서기 어렵게 한다. 8-9세기에 동방교회를 휩쓸었던 성화상논쟁 이후 이콘은 정해진 규범에 따라 만들어졌다. 작가의 창조가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기준대로 한 획도 다르지 않게 모사해야 했다.



IMG_4593.JPG 이콘은 철두철미 규범에 따라 제작되었다. 나중에는 규범이 점점 정교해져서 턱수염 길이와 스타일 등으로도 성인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애초에 성화상논쟁을 촉발시킨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슬람의 영향이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성화상에 대한 태도에서는 확실히 비슷한 점이 있다. 오르한 파묵이 <내 이름은 빨강>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이슬람 세밀화가들 역시 단 한 획도 자신의 생각이나 영감을 화폭에 담아선 안 되었다. 평생을 똑같은 그림만 그리며 살아온 화가들 가운데는 눈이 멀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거룩한 존재에 대한 경외가 사람들의 정신을 옭죄던 세상이었다.


거기에 동방교회의 특성이 국가와 왕실, 민족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였던 까닭에 이콘에 들어있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내용들이 당연히 낯설 수밖에 없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멀고도 먼 땅에서 찾아간 여행자가 이콘을 알아보기 어려운 큰 이유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넘어, 가로막는 장벽을 넘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콘에는 그 시대의 신앙이 배어 있다. 신앙의 고백이 아로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그 이콘을 제작했던 이들의 믿음이 오늘 이 시대의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은 큰 위로가 되고 경외감을 자아낸다. 정치와 문화, 역사적 부침 때문에 덧붙여진 복잡한 해석들 말고 가장 본질적이고 단순한 현실, 그것은 그저 그 이콘이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인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예술, 대중과 소통하려는 최소한의 수고조차 보이지 않는 불친절한 교회미술……이라는 평가도 덮어두자.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필요한 건 다만 이 순간의 만남뿐이다. 마음을 열어 그저 바라보기. 그것뿐이다.



IMG_4603.JPG 그러나 한편 반가웠던 십자고상. 동방교회의 지성소는 늘 닫혀 있는데 판타나사수녀원에서는 열린 문 안쪽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판타나사 수녀원 성당에 들어서서 어둠에 익숙해지며 바라본 프레스코화들은 참 많이도 낡고 상처가 많았다. 한참을 보다보니 자꾸 불편해졌다. 어쩌다 이토록 뭉개지고 파헤쳐지고 부서지고 깨졌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는 이내 '보수도 좀 하고 고치면서 살지' 싶은 원망이 일었다. 상처를 대면하는 게 싫은 것이다. 온전한 것만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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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그 프레스코화들이 시나브로 위안이 된다. 상처 입은 그림이 위안을 준다는 건 무슨 역설일까. 어쩌면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상처만이 아니라 또 다른 상처에 같이 아파함으로써 덩달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인지도.


그리고 어쩌면 무엇보다 그렇게 상처 입었기 때문에, 군림하지 않는 성화 속 인물과 사건들이 나에게 좀 가까이, 내 삶과 내 상처 가까이 다가온다. <모레아 기행>에서 카잔자키스가 전해주는 한 여성의 고백과도 같은.



“이런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비잔틴의 무자비한 판토크라토르(우주의 전능한 지배자)와 화해할 수 있었어요. 성자들은 나와 같은 인간이고 천사들도 사람처럼 미소 짓고 슬픔을 느끼고, 하늘나라는 죽음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여기, 세속적이고 참을성 없는 내 마음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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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 상처 입은 이콘들로 가득한 성당에서 이 수녀들이 무엇을 기도하는지. 이 세상에서는 죽고 오롯이 천상의 세계만을 향하기 위해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사는 동방의 수녀들이 이 오래된, 사라진 제국의 그림자 속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다만 그들의 기도가, 저 성화들의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는 탓에 '회칠한 무덤 같은' 바리사이의 기도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상처와 틈. 가장 초라하게 훼손된 바닥. 그리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이 상처를 어루만지고 낫게 하리라. 그리하여 종국엔 상처가 미덕이 될 수도 있는 곳.


그래서 상처 입은 짐승의 신음이 들리는 날, 내 안의 상처가 건드려지는 날, 그 수녀원 회랑으로 들어서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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