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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로지 Apr 02. 2020

코로나 시대의 건배

바야흐로 모든 상식적인 시대가 가고, 코로나 시대가 왔다. 

모든 일상적인 일상이 뒤틀리고, 상상하지 못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나에게 그중 하나는 5주째 연속되는 재택 원격근무랄까.


올해 초 부임하신 새로운 한국 지사장님은 싱가포르에서 근무하시며 한국을 오가신다. 연초에 방문하시고는 곧 다시 한국에 오겠다며 줄줄이 일정도 다 잡아 놓으셨지만, 우리는 아무도 이렇게 시대가 급변할 줄 몰랐지. 한국과 싱가포르로 찢어진 팀은, 5주 만에 다시 노트북 화면에서 만나고, 웃고, 떠들고, 마셨다. 


맥주 광고 아님, 마트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250ml 제품

공식적으로 알코올을 마실 수 있는 해피아워로 지정된 미팅,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음료와 사랑하는 것들 (가족, 반려견, 애착(?) 인형 등)을 가지고 노트북 앞으로 모였다. 처음 해 보는 '가상현실 해피아워'.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즐겁고 활기 넘치는 시간이었다. 평소 온라인 미팅을 하면 - 특히나 많은 사람이 - 시큰둥 하기 마련인데, 다들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 냄새'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수다 소리, 웃음소리, 시시콜콜한 잡음들이 정겨웠다. 


코로나 사태 처음에는, 바이러스 그 자체 보다도 일정한 집단이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두려웠는데, 이런 갈라지는 세상이 보기 싫었는지, 신종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저주를 내렸다. 전쟁이라면 적군과 아군이 있을 텐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적'이 되어버린 이 세상.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안전한 아군이 아닌, 그들의 의자와는 상관없이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사람들을 피하고, 또 그러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보듬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시간들이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오랜 시간 집안에 있는 한 달 반을 보내고 있고, 초반의 두려움과 무기력함은, 순응함과 기다림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초반에는 정리를 시작했다. 책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옷장을 정리했다. 중반에는 책 읽기를 시작했다. 책장을 정리하며 새롭게 발견한 책,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새 책도 부지런히 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또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은 살면서 꼭 내고 싶은데 항상 쳇바퀴 돌아가듯 흘러가는 일상을 핑계로 시간을 내지 못했던 일들. 


지금 그 쳇바퀴의 발통이 빠져 있는 이 시간이 바로 내게 주어진 기회임을 생각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오랜 이야기 들이 글과 작품이 되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모든 것이 전 지구적으로 멈춰버린 시간. 

이 시간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좀 더 이 고요한 시간 안에서 나를 가라앉히며 차분히 그 의미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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