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모든 상식적인 시대가 가고, 코로나 시대가 왔다.
모든 일상적인 일상이 뒤틀리고, 상상하지 못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나에게 그중 하나는 5주째 연속되는 재택 원격근무랄까.
올해 초 부임하신 새로운 한국 지사장님은 싱가포르에서 근무하시며 한국을 오가신다. 연초에 방문하시고는 곧 다시 한국에 오겠다며 줄줄이 일정도 다 잡아 놓으셨지만, 우리는 아무도 이렇게 시대가 급변할 줄 몰랐지. 한국과 싱가포르로 찢어진 팀은, 5주 만에 다시 노트북 화면에서 만나고, 웃고, 떠들고, 마셨다.
공식적으로 알코올을 마실 수 있는 해피아워로 지정된 미팅,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음료와 사랑하는 것들 (가족, 반려견, 애착(?) 인형 등)을 가지고 노트북 앞으로 모였다. 처음 해 보는 '가상현실 해피아워'.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외로 즐겁고 활기 넘치는 시간이었다. 평소 온라인 미팅을 하면 - 특히나 많은 사람이 - 시큰둥 하기 마련인데, 다들 어떠한 형태로든 '사람 냄새'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수다 소리, 웃음소리, 시시콜콜한 잡음들이 정겨웠다.
코로나 사태 처음에는, 바이러스 그 자체 보다도 일정한 집단이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두려웠는데, 이런 갈라지는 세상이 보기 싫었는지, 신종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저주를 내렸다. 전쟁이라면 적군과 아군이 있을 텐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적'이 되어버린 이 세상.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안전한 아군이 아닌, 그들의 의자와는 상관없이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사람들을 피하고, 또 그러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보듬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시간들이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오랜 시간 집안에 있는 한 달 반을 보내고 있고, 초반의 두려움과 무기력함은, 순응함과 기다림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초반에는 정리를 시작했다. 책을 정리하고, 서랍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옷장을 정리했다. 중반에는 책 읽기를 시작했다. 책장을 정리하며 새롭게 발견한 책,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새 책도 부지런히 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또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은 살면서 꼭 내고 싶은데 항상 쳇바퀴 돌아가듯 흘러가는 일상을 핑계로 시간을 내지 못했던 일들.
지금 그 쳇바퀴의 발통이 빠져 있는 이 시간이 바로 내게 주어진 기회임을 생각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오랜 이야기 들이 글과 작품이 되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모든 것이 전 지구적으로 멈춰버린 시간.
이 시간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좀 더 이 고요한 시간 안에서 나를 가라앉히며 차분히 그 의미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