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Aug 19. 2021

인생이란 이름의  자전적 소설 쓰기

소설의 처음은 어떻게 시작될까

연히 들른 서점에서 내 시선을 이끄는 책 제목을 발견한다.

뭔가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나는 서점에 가곤 하는데 갈 때마다 나는 해답을 얻었다.

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이야기의 탄생’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며 이야기의 구조는 어떻게 분석되는지 일반적인 서술이 아닌 뇌과학을 접목시킨 분석이 흥미로웠다.

우리의 뇌는 원래 이야기로 기억한다는 설명이었다.

억이란 현실의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누군가는 부정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기억은 심히 왜곡되어 있다.

경험이란 것도 우리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진 일부의 정보를 가지고 뇌가 편집한 내용이다.

우리의 뇌에는 각본을 쓰는 작가가 있고 편집을 하는 기술자도 있다.

어떤 경험은 버려지기도 하고 어떤 경험은 증폭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경험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소한 사건이 불러오는 변화이다.

이 또한 뇌의 신경체계를 닮아있다.

뇌는 평소와 같은 환경은 지각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부정하고 무시한다.

어떠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을때 뇌는 비로소 반응하기 시작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영하의 강의에서 인상깊게 들은 대목이 생각난다.

이야기는 갈등을 암시하는 사건, 즉 일상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독자는 이러한 맥락적 암시를 무의식적으로 쫓으며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내가 예상하는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뇌의 보상체계를 활성화시킨다.

마치 마약, 알코올 중독자들의 뇌 반응처럼 참을 수 없도록 자극적이어서 우리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고

욕망의 충족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의 분석은 여기에 한가지 요소가 더해지는데 ‘정보 격차’라는 개념이다.

정보 격차로 설명된 부분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불완전하기에 그 정보를 채워서 완전한 이해에 이르기 위한 심리적 욕구이다. 연속극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그 후속 내용이 궁금해서 다음 화를 끝까지 보게 된다.  

막상 다음 화에 보면 별 것도 아닌데 호기심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엔진으로 역할 하는 것이다.

 

비로소 내 머리 속에는 이야기가 술술 시작되고 있었다.

얼마 전 일부터 떠올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구성요건은 마치 이성에게 반하는 과정과도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상 속의 의도치 않은 사건, 우연히 마주친 연,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분위기.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그녀는 아침이면 까페로 향했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처럼 아침에 커피와 크라상을 먹는 것이 그녀가 즐기는 아침의 틴이었다.

한국이라는 땅에 발이 묶여 있지만 그녀는 늘 여행을 꿈꾸었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여행 계획을 세우며 스카이스캐너로 비행기의 노선과 최저가를 검색하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다. 그러나 이제는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에서 여행금지 국가 리스트를 확인할 뿐이다.

 

2020년 COVID 19, 무시무시한 역병이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한국은 가장 먼저 사이비 종교단체 신천지를 통하여 바이러스가 빠르게 유입되었다. 이런 불명예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한국인 입국불가 조치가 취해졌다. 하필 우한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그들은 몰래 교회조직으로 파고 들어가 교인들을 유인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이제 교회와 성당에서는 더이상 미사나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극도로 기술 문명화된 IT 강국, 한국의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단체는 빈부격차의 틈을 타고 미래가 없는 이들에게 중세의 면죄부 같은 종말론적 비지니스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곧이어 바이러스는 유럽 대륙과 미국을 강타했고 아예 국경을 봉쇄하는 극단의 결정을 내렸다.

전세계에 수백 만명, 미국에서만 벌써  수십 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지금도 계속되는 확진자 수는 언제 다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지 아니 일상의 회복으로 돌아갈 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중세의 페스트가 이와 같았을까?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공포로 몰고 갔고 타인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집합은 금지되고 학교는 휴교되었으며 상점은 문을 닫고 직장은 휴업상태, 또는 재택근무로 돌아갔다.

유럽은 아예 집밖 이동이 금지되었으며 약국을 가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가증 없이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관광객으로 들끓었던 파리, 이탈리아 등은 길거리가 텅 비고 경찰이 배치되었다.

람들은 타인들을 경계했고 강의는 취소되고 학교는 휴교가 되었으며 직장은 재택으로 전환한다.

 

 그녀가 여행을 좋아했던 것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반복은 지겨웠고 그녀에게는 형벌과 같았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나가 새로운 것을 꿈꾼다.

어쩌면 그녀는 새로움의 대상을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이가 들면 새로움을 경험할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사고가 제한되고 늘 그렇고 그런 일상 속에 자기만의 편견과 고집으로 더이상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늙은이가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매일 신선한 빵을 듯이 매일 신선한 하루가 제공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램이었다.

신선한 하루에 활력을 주는 것은 사실 여행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 때문에 인생은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얼마전 그녀는 대학 동창들이 만든 밴드에 용기 내어 가입했다.

싸이월드가 한참 유행일 때도 아이러브스쿨에서도 동창 찾기에 별 관심이 없던 그녀였다. 그때는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였고 지금은 백수로 지낸 지 몇 년이 되었다. 삶이 단조롭고 만날 사람도 그닥 없는 그녀는 대학 동창회 밴드에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명문대를 나온 덕택에 동기들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기반을 갖추고 있는 듯 했다.

아무나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데….

사회에는 아무런 안전망이 없고 모든 인간관계는 이해관계에 불과했다.

그녀는 늘 외로웠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친구는 꼭 필요한 법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친구를 사귀는데 영 소질이 없었다. 소질이 없다기 보다는 천부적인 결함이 있었으니 너무나 여성적인 외모는 동성의 친구들이 멀리하는 이유가 되었고 이성은 그녀를 결코 친구로 놔두지 않았다.

밴드를 통해 수십 명의 친구들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겠다는 것이 그녀의 계산이었다.

대학 공통 학번 모임이다 보니 이곳에는 다양한 학과 전공이 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동기도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곧바로 친구가 되는 게 한국 사회의 학연이다. 며칠 밴드 글들을 눈팅으로 읽으며 동기들의 이름과 성격, 모임 내용과 후기들을 훓었다.

마침,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 골프, 영화, 등산 등 취미별 소그룹으로 나뉘어 개별적인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녀는 불문학과를 나왔지만 과모임에는 흥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법이다.

그녀가 택한 골프와 영화 소모임에는 경영학과 친구들이 많았다.

차분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즉흥성을 가졌다.

오랜 여행의 결과, 계획보다는 실천이 중요하고 현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는 것이 경험에서 쌓은 결론이었다.

또한 SNS 문자로 소통하는 것 보다는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을 선호했다. 얼굴도 모르는 동기들과의 단체톡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 라고 말하였는데,

그녀의 완벽한 무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심코 들어간 까페가 와인바와 이어져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흥미를 느꼈다.

독특한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고

새로 오픈한 장소이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즉각 사진을 찍어 동기들과의 단톡방에 올리니 사람들이 어디냐고 관심을 보여왔다.

“좋아, 여기 오고 싶은 사람 오라구~ 당장!”

그녀의 모토는 항상 롸잇나우 이다.

그렇다. 인생은 타이밍이지 않은가.

몇 명만 모여도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동기들 4명이 올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프사로만 봤던 얼굴들이라 과연 알아볼 수 있을지 그녀는 궁금해졌다.

바의 테이블을 세팅해 두고 그녀는 집으로 가서 메이크업을 다시 하고 옷장을 들여본다.

얼마 전 장만한 내 몸에 딱 안성맞춤인 롱 원피스.

하늘거리는 실루엣이 여성스럽고 우아하면서 적당히 몸매를 강조하는 모래시계형의 디자인이다.

라 병도 원래 여인의 몸매를 본 따서 만든 모래시계 디자인이 아니던가.

곡선의 풍만함은 여성의 신체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34.25.36의 미스코리아 몸매가 아니더라도 옷에 따라서 얼마든지 아름다움은 창조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상대적 비율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평상복은 항상 청바지가 아닌 롱 드레스였다.

무언 중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패션이 화려해지는 향이 있는데 실은 그런 사람은 사교적이지 않은 편이다.

친밀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옷을 입으며 스스로 눈에 띄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문과 전공자답게 낭만적인 파리 브랜드,

산드로의 원피스를 입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

첫만남은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첫만남의 느낌이 그 다음 후속 만남을 결정하며 심리적 초두효과가 좋아야 오래 두고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의 첫만남에 카페트로

자신을 꽁꽁 싸메고 짜잔~하고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녀가 죽도로 싫어하는 것이 잊혀지는 것이다.

존재의 증명은 타인에게 달려있다.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찌기 극의 구성요건정리했다.

그것도 2천년이 넘은 기원전에 현대극의 요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원형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는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플롯을 이어가는데 첫번째 행위가 일어나는 시작, 그리고 그 행위의 인과로 발생하는 중간, 그리고 행위의 결말로 이어지는 마지막장의 세부분이다.


그는 통일된 이야기에서의 제재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임을 강조한다.

주인공의 삶에서 하나의 극적 행동을 이끌어내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 행동 속에서 사건을 주도하며 극의 이야기는 명확하게 하나가 되고 긴밀하게 이어진다.

첫번째 극적 행동이 갈등을 드러내고 여기서 이야기가 중간까지 전개되며 운명이 바뀌는 정점에 이르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두번째 극적 행동이 생겨난다.

이 행동은 이야기의 결말 또는 해결을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인공을 스스로 내러티브하여 공감하게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해방감과 함께 위로를 얻는다.


진실된 이야기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럴 수 있는 개연성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은 이야기의 몰입을 유도한다.

작가는 스스로 경험한 것의 토대 에서 글을 쓸 수

있다. 허구의 세계에 기초한 이야기는 물위에 떠있는 기둥처럼 온전치 못하다.

또한, 진실된 이야기라고 구구절절 모든 일들을 나열해서는 극의 구조가 뒤죽박죽이 된다.

수많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지만 그것 모두가 인과관계로 발생되는 사건은 아니며 더더욱 하나로 모여지는 의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한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으로 이야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 부분을 빼도 이야기의 흐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부분은 없애는 것이 맞다.

주제에 맞지 않은 이야기는 초점을 흐리듯이 플롯에 상관없는 부분은 과감히 편집하며 하나의 통일된 시퀀스로  이야기의 나열을 검열하고 현실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람은 늘 사람을 그리워한다. 여자는 남자를 생각해본다. 삼차원의 감각으로 느꼈던 경험들은 이차원의 영상으로 눈감으면 다시 영사된다.

그 속에 경험은 미화되고 편집자의 주관적인 의도와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다.

과연 남자는 어떤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과연,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