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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29. 2021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심리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있다

정동진 독립서점에서 발견한 영화적 깨달음

즉흥적으로 떠난 정동진 여행이었다.

모두가 강릉과 양양을 핫하다고 외칠 때 왠지 구식같고 철지난 유행같은 곳이 정동진이라 생각되었다.

#으로 검증되는 인스타 명소, 과연 그런 곳들에서 우리는 행복을 인증받을 수 있을까.

항상 남들이 yes라고 외칠 떄 과감히 no 라고 외치는 것이 나의 모난 성격이라

나는 이번에도 남들과 다른 선택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기로 한다.

왜? 냐고 묻는다면' 남들이 가지 않으니까' 라고 당당히 말하기로 했다.

 동진으로 가는 첫 기차는 6시 38분이었다.

강릉에서 새벽에 기상,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을 보고 나오니 시간이 딱 맞았다.

기차시간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정동진은 일출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인데 어떻게 일출 시간이 지나서 첫 기차가 있는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차시간은 1월1일의 해뜨는 시각에 맞춰 정해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년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정동진을 선택하기 때문에 일정표가 그렇게 고정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처럼 그냥 원래 그런 거니까 그걸 계절에 따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저 지하철 처럼 시간표란 일년내내 같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었겠지.

 

무궁화호의 기차 객실은 텅 비어 있었다.

KTX의 속도와 편리함 때문인지 사람들은 더이상 무궁화로 갈아타야하는 정동진을 선택하지 않는 듯 했다.

적당한 속도의 기차는 오히려 차창 밖의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시간을 선사했다.

그렇게 바다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해변 열차의 기분을 느끼며 십여 분이 지났을까 바로 정동진역 도착이다.

모래시계를 찍었던 이정재의 나이가 이제 오십이 다되어가니 아마도 이곳은 삼십년 전의 핫 플레이스 일 것이다.

인적 하나 없는 모래사장과 새벽 바람의 상쾌한 공기를 온몸으로 호흡하며 비로소 마스크 없는 자유의 해방감을 맛본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뿌듯한 자부심을 느껴본다.

남들과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없다고, 나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말해본다.

그들은 항상 나에게 이상한 시선을 보냈었지, 그리고 사차원이라는 유머 아닌 조롱을 하곤했지.

별 다른 이유 없이 그러나 나는 별 일을 만들고 싶었고 별 볼일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정동진의 바닷가길을 느긋이 산책하며 어제 로컬 잡지에서 우연히 알게된 독립서점으로 향했다.

'이스트씨네' 라는 곳인데 영화를 테마로한 책들을 큐레이션 한 곳이었다.

마치 극장 안을 들어가듯 컴컴한 조명과 커튼 월이 쳐져있는 곳은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의 공간을 제공했다.

책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가 부담없이 술술 읽힌다.

결국,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책 속에 인용된 영화는 모두 내가 봤던 것일 뿐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들이라 더욱 공감이 되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비포 선셋&비포 선라이즈, 미드나잇 인 파리, 노팅힐, 어바웃 타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행위일까?

일단 영화는 현실을 가려준다. 자기 자신을 잊고 지금의 시공간에서 떠나게 해준다.

주인공의 삶 속에 자신을 대입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감정을 이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poetica)에서 이러한 효과를 카타르시스(katharsis)라고 처음으로 명시했는데

카타르시스란 그리스어로 감정의 정화와 배설을 뜻한다.

극을 보고 있는 관객은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을 통해서 연민의 마음이 유발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배출하여 슬픔의 정념이 순화된다고 하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작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과정을 통해 억압된 정서가 배출되어 심리적 외상을 치유한다고 믿었다.

영화를 통해 울고 웃으며 감정을 억압하려는 의식적 긴장에서 벗어나 정서적 방출을 촉진함으로써 마음의

방어기제를 풀고 특정 캐릭터나 주인공에 자신을 투사하여 동일시한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적 가능을 통하여 정신분석적 요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에 있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끌어내어 밖으로 표현함으로써 치료의 효과를 보는데

평소 마음의 상처는 심리적 저항을 통해 꺼내기가 어렵고 전혀 의식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영화는 상대적으로 몰입하기가 쉽고 자신에게 있었던 문제점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통하여

인지적인 치료가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영화의 스토리가 지닌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영화란 나 자신이 영화 속 주인공과 얼마나 유사성과 공감대를 얼마나 형성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래야 정서적으로 몰입하고 캐릭터에 참여하여 자신의 갈등이 해결되는 것 같은 만족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영화라는 대중 매체는 인간 심리의 공통된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 욕망을 상징화하게 된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특히 큰 반향을 일으켰던 '비포 선셋' 이라는 영화를 생각해 본다.

여행 중인 기차안에서 우연히 만난 이성과의 즐거운 대화를 통하여 설레임을 느끼고

비엔나라는 낭만적인 도시를 함께하며 오로지 둘만의 기억으로 채워가는 두사람의 러브스토리.

많은 한국의 영화팬들이 이 영화를 좇아 로맨스를 좇아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열차안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보았지만, 결국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씁씁한 결론을 내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작가가 되고 스스로 감독이 되어 스스로 연출을 해야한다.

내가 로맨스를 얻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인연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해야한다.

매일 매일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사람에게 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복권이라도 사야 뭐라도 해주지"

한국에서 이 영화가 인기를 끈 것이 나는 한국적인 연애 문화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 특성이라는 말로 중화시켰지만 나는 이것이 폐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썸 문화이다.

' 내거 인듯 내거 아닌 내거 같은 너'라는

유행가사에 나오는 동어반복의 어패.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을 표방하면서 슬쩍 슬쩍 안전선을 넘으며 간 보는 행위에 숨겨져있는 비겁함.

예전의 히트 드라마에서 박신양은 이렇게 말했었다.

 " 내꺼라고 왜 말을 못해, 이 남자는 내꺼라고."

얼마나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인가.

요즘은 썸 문화는 이런 점에서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남자들도 많이 상처받았구나, 더이상 내 여자라고 말 못하고 용기 내지 못하고 그저 썸만 탄다니.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은 구시대의 유물로서 지금은 접금금지 명령이나 성희롱으로 고소감이 되었다.

그렇다고 암울한 현실을 탓하기에는 인생이 아깝고 열정이 아깝다.

나는 한 가지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왜 여자는 대시하면 안되지?

실제 해본 결과 여자가 대시하면 생각지도 못한 장점들이 있었다.

내가 고르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작업거는 사람에게 응하는 것은 스스로 좁은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성공률이 꽤 높다는 것은 덤으로 알려드린다.

대시를 한다고 해서 어마무시한 용기를 내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간단한 행위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비포 선셋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여행지의 인연을 기대한다면

그거 기다리지 말고, 누구에게든 밝은 에너지의 기운을 모아 인사를 건네보자.

그 다음의 일은 그 다음에 가서 생각해 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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