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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Sep 20. 2022

feat. 집은 집다워야 집이지

      누군가 그러던데요, 돈 열심히 벌어봐야 화장실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요. 화장실은 당연히 집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좋은 조건의 거주환경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아주 옛날 집은 화장실이 방 안에 없었고요. 조건에 따라 지금도 화장실이 방에 없는 거주공간이 있지요. 하숙방, 쪽방, 고시원과 같은 공간 말이에요. 이 공간도 어엿한 집이지요. 첫 독립을 시작한 공간에 안주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버는 큰 이유는 집,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서일 거라고 생각해요. 화장실이 기본 2개는 되는 신축 아파트에 다들 살고 싶어 하잖아요. 아닌가, 저만 그런가요?  


      저희 집에는 화장실 한 개가 집 안에 있어요. 첫 시작이 보잘것없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어요. 와아, 저 그동안 그래도 열심히 살았나 봐요. 지금은 화장실이 2개인 집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도 짱구를 굴리는 중이죠. 아이가 한 명이면 모를까 두 명의 아이들이 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고요. 더 나아가 아이들이 장성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려도 근처에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3 주택을 보유한 부유를 거느리고 싶거든요. 욕심이 과한가요. 아니, 생각은 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 빚을 더 많이 내어 넓은 집으로 가보자. 호기롭게 집을 부동산에 내어놨는데, 하필 이때 금리도 오르고 주거시장이 얼어붙었어요. 6개월 동안 집을 보러 온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에요. 아니 이게 될 일이냐고요.


      사실, 저는 단독 집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주택은 해야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지요. 주택에 살고 있는 어떤 언니는 비가 오면 어디로 물이 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면서도 즐기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가지런한 잔디마당을 갖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잔디도 깎아주어야 하고 2,3년에 한 번씩 방수도 손봐야 하고요. 지금 이 좁은 집도 엉망인 상태로 살고 있는데 주택은 이것저것 손보고 해야 할 일이 몹시도 많다고 하니 주택살이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 '답은 아파트'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양가 부모님이 아프기라도 하시면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저 혼자) 하고 있거든요. 이 분들이 서로 한 공간에 있으면 불편하실 수 있으니 '대문을 다른 방향으로 둔 집을 지어볼까',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집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하며 고민을 계속 사서 하는 중이에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부동산 지도를 보면 오를 대로 올라버린 집값에 입이 떠억 벌어져요. 아파트, 단독 구분할 거 없이 제 손에 쥐어지지 않는 구름 같아요. 희망찬 고민이 한 껏 부풀다가 갑자기 수분이 쏴악 빠지며 아사삭 바스러져버려요. 제가 원하는 조건을 가진 집은 남들에게도 보기 좋은 떡인가 봐요. 쩝. 제가 섣불리 집어 먹을 수 없는 떡이라는 생각에 핸드폰을 닫아요. 이럴 때 신랑이 옆에 있으면 한마디 했을 거예요. '그런 걸 뭐하러 봐. 나는 우리 집이 좋아. 이 집에서 평생 살아도 좋아.' 라며 제 속을 긁겠죠. 아니 저도 우리 집이 좋아요. 좋은데, 좋은데 말이죠...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에요. 다시 현실로 돌아와요.  


      하원 후 집에 와서 간식을 먹는 아이가 미묘하게 조용하네요. 혹시나 걱정이 되어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묻는데 대답이 없군요. 다시, '오늘 어린이집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라고 물으니 '응' 이래요. 가슴이 철렁. 혹시나 싶어 질문을 다르게 해서 물어봐요. '오늘 어린이집에서 재밌게 놀았어?' 에도 똑같이 '응'이라네요. 아직 말을 잘 못하는 3살 아가라 괜히 걱정이 되어요. 예민한가 싶다가도 내 아이 내가 잘 살펴야지 하고 그냥 꼭 안아줬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 남편도 묘하게 기운이 빠진 듯이 보여요. 휴일을 보내고 오랜만의 출근이라 그런 걸까요.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대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건지, 아니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그 아빠에 그 아들일까요.


      아이들을 재우려 누웠어요. 깜깜해서 무섭다는 아이는 엄마 손도 잡고 아빠 손도 잡아야 한대요. 오른손으로는 제 왼손에 깍지를 끼고, 저 왼손으로는 아빠의 오른손을 꼭 잡고 배에 올려놓는군요. 그리고 말을 배우는 아이가 나지막이 중얼거려요. '아빠량 엄마량 손 자뱌서 꺔깜해도 안 무떠워.' 엄마아빠 양손 잡고 저 배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아이가 왜 그리 사랑스럽던지요. 오늘 하루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알 수는 없지만, 꼭 잡고 온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겠구나 싶은 거 있죠. 그래요. 저도 이제 곧 복직을 할 테고 제가 겪은 하루의 모든 것을 나눌 수는 없을 거예요. 말을 안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들도 있을 테죠. 그래도 우리가 각자의 하루를 보낸 후에 모인 이 작은 보금자리에서 웃음을 나누고 온기를 나누며 사랑을 주고받다 보면 내일을 맞이할 힘을 낼 수 있을 거예요. 이런 하루가 매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함께 하는 이 공간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면 참 좋겠어요.


      아이들을 재우고, 신랑에게 물었어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야?' '집? 집이 집이지 집이 뭐야.' 라면서 와이프가 있는 곳, 휴식공간이래요. 맞아, 그러네요 집은 바깥에서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온전한 쉼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 이어야지요. 집은 집다워야지요. 집이 넓어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래, 현실적인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려고요. 미래의 나에게 그 고민을 넘기려고 해요. 지금 생각해봐야 답도 없고, 궁해지면 땅을 파게 되어 있으니 그때에는 간절한 마음에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결정을 하게 될 거예요. 미래의 저를 믿어요. 하하.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은 부모님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함을 바라고, 사이좋은 우리 가족의 관계를 유지하여 웃음기 넘치는 영상을 그분들께 매일같이 보내드리는 거죠. 사랑이 넘치는 공간은 크기의 제약이 없죠. 사랑이 흘러넘치는 아주 큰 집을 만들어 보려고요. 그것이 어쩌면 제가 해야 할 일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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