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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Sep 23. 2022

feat. 만물이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둔다


    첫째 J의 놀이터 친구 E가 이사를 간 것 같아요. 몇 주 전부터 놀이터에서 안보이더라고요. 걷기 시작할 때부터 J를 데리고 매일같이 놀이터에 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J처럼 매일 나오는 친구들 중에 유난히 J와 합이 잘 맞아 만나면 너무나 즐겁게 캬캭대며 노는 친구가 있어요. 그 둘이 콩콩거리며 같이 노는 모습을 보면 너무 흐뭇해요. 엄마의 복직이 급히 결정되었다는 얘기를 언뜻 들었는데 근무지가 이 근처가 아니었나 봐요. 몇 주 째, E를 만날 수가 없네요. 말을 하기 시작한 J가 가끔 E를 찾아요. '엄마, E가 보고 시퍼. 내일은 놀이터에서 E랑 만나서 놀쟈.'


    학세권이라는 말이 있죠. 결혼하기 전에 한 선배가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아이 6세쯤 학구열이 괜찮은 중학교를 찾아서 그 옆의 초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사를 한다나요. 그때에는 이야기를 듣고 입을 쩍 벌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끄덕이게 된 것도 같아요. 그런데 막상 이사할 만한 동네를 찾아보다가도 마음이 자꾸 지금 사는 동네로 돌아와요. J와 B가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하릴없이 만나 캬캭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면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약속 없이 만나는 J의 친구들과 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슬픈 건 왜일까요. 아니 제 친구들도 아닌데, 정작 J는 금방 잊어버릴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벗'이라는 단어에 늘 약했던 것 같아요. 사전적 정의는 이렇죠,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 또래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늘 발 동동거린 것 같아요. 애써 쿨한 척하면서 홀로 서운하다 말도 못 하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꽤 커서까지도 거리두기 연습을 힘겹게 한 것 같아요. 그러다 마음이 먼저 홀랑 가 버리기라도 해서 거리두기에 실패한 친구들에게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요. 친구들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어요. 늘 제 맘이 먼저 저만치 달려가서 문제인 거죠. 이런 모습이 내 아이의 친구에게까지 닿았나 봐요. 어휴 아이의 친구는 아이의 몫으로 두어야 하는데 말이죠.  


    얼마 전에 만나기로 한 제 친구가 약속을 급히 취소했어요. 평소라면 다음 약속을 잡을 텐데 그런 것도 없이 말이죠. 알겠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태도에 저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어요. 갑자기 친구와 멀어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평소와 같이 카톡도 하고 그 얼마 전에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며 즐겁게 떠들었는데, 만남 이후 예전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날 만나서 농담을 너무 심하게 했나, 내가 너무 자주 만나자고 했나, 아니면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뒤엉켜 흘러가요. 서운했어요. 서운하다 말도 못 할 것이어서 더더군다나 속상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웠고, '연락을 안 하고 말지' 하고 넘겨버리기에는 웃으며 지낸 수많은 날들이 떠올라 애석했어요. 각자의 가정이 있고, 각자의 일이 있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참을 곱씹어 보았으나, 제가 딱히 잘못한 것은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웃고 있는 그녀의 표정 뒤에 어두운 내색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한 명은 커피도 안 마시고 집에 애들이 걱정된다며 먼저 가겠다고 했고요. 한 명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도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래, 혹시 우리가 지금 잠시 멀어진다면, 혹시 나의 어떤 모습으로 인해 네가 불편했다면, 그것은 나로 인함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는 어떤 해결되지 않은 돌멩이 때문일 거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네 마음에 있는 짐은, 네가 내게 보이거나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 이후, 외부의 관계에 덜 집중하고 나 스스로 바빠지기로 했어요. J와 B와 놀이터에서 더 신나게 놀고, 글도 쓰고, 제 공부도 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스치는 도덕경 한 구절에 마음이 잠시 머물러요.


 성인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내면의 눈을 믿는다.
그는 만물이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는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면의 것을 취한다.


    마음이 머무는 동안 잠시 눈을 감아요. 한적한 해변에 가만히 앉아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어요. 쏴아~ 쏴아~ 하얀 거품을 만들며 모래 위에 곱게 올려놓은 발을 톡톡 두드리며 다녀가요. 하루 종일 앉아있다 보니 내 발을 톡톡 건드리던 파도가 저 멀리 물러나 모래사장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해가 질 무렵에는 다시 돌아와 발을 간지럽히기도 하는군요. 마음이 조금 차분해진 것도 같아요. 모래알을 손에 움켜쥐려 노력한들 곧 흘려보내야 할 거예요. 중요한 것은 맑은 날 잔잔한 파도와 모래성을 만들며 놀았던 기억, 내 손에 남아있는 고운 모래의 촉감일 거예요. 그 기억을 가지고 저는 다시 바다로 가겠죠. 바다에서는 다시 파도가 철썩철썩 하얀 거품을 내며 제 속도대로 저를 맞이하겠지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제 주변을 바라보아요. 친구가 전부이던 시절을 함께 보냈으나 지금 곁에 없는 친구도 있고, 우연한 기회로 오랜 시간 제 곁에 있는 사람도 있지요.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을 나누는 이도 있고, 지나가는 낯선 이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기도 하고요. 영원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고 제 속도대로 지나가겠지요.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은 가족들도 언젠간 떠날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모든 것들이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두어 보아야겠어요. 여기에 서서 가만히 오고 가는 모든 것을 바라보아요. 오는 때가 있으면, 가는 때도 있는 법. 가는 이가 있으면, 오는 이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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