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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Aug 19. 2022

feat. 밥은 먹고 다니니


  신혼의 딱지를 아직 떼지 못할 즈음, 어느 날 억울한 감정이 들었어요. '왜 나는 집에 오자마자 대체 밥부터 차려내는 거지..?' 하고 말이지요. 결혼을 결심하면서도 내가 밥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신기하죠. 누가 밥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제가 글쎄 하루 종일 냉장고를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집에 오자마자 밥을 차릴 생각을 하더라니까요. 밥을 먹는 삶에서 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식상하지만 예를 들면, '여자들의 삶'과 같은 것들 말이에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보통 밥을 하는 주체는 여성이잖아요. 특히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 말이에요.


  연극 '툇마루에 있는 집'에서 엄마는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면서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아들을 위해 아들의 기일마다 겉절이 김치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아요. 그리고 엄마의 시어머니도 정신이 오롯할 때 늘 자상하게 '밥은 먹었냐?' 하고 묻지요. 자식들 뿐만 아니라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식구들, 그 집에 찾는 모든 이에게 요. 늘 따뜻한 밥 한 공기 떠 먹이며 그들을 위로해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엄마는 늘 밥을 하셨죠. 가족들에게는 물론이고 그 집에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밥 한 상 대접해요. 넉넉하게 밥 한 술 떠서 먹이는 엄마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정답게 느껴졌어요.


  저희 할머니도 정신을 스스로 가누실 때에는 늘 손주들 밥을 (많이) 먹이려고 하셨어요. 한참을 먹고 있는데도 그것 가지고 되겠냐며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더 가져오셨죠. 그럴 때면 저는 '할머니 저 잔뜩 먹었어요. 이제 그만요!' 이러면서 도망갔어요. 그리고 그 풍경은 제 남편의 어머니 집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어요. 'J야, B야, 고기 좀 먹자, 바나나 좀 먹자, 과자 좀 먹자, 여기 고구마도 있다.' 이러면 제가 또 말립니다. '어머니, 이제 그만 먹이셔도 될 것 같아요.' 이런 정경이 30년, 40년이 흘러 저와 제 아들의 손주에게서도 똑같이 펼쳐질까요? 아, 제 아들은 어느 날 비혼을 선언하며 홀로 살아갈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XY 염색체를 지닌 반려자를 데리고 올지도 모를 일이고요. 저에게 당연히 손주가 있을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겠어요. 손주의 탄생은 제 관할 영역이 아니지요. 암요.


  지금은, 밥 하는 제가 그리 싫지 않아요. 오히려 하루의 한 끼는 함께 먹을 것, 아이를 키우면서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예요. 밥 한 끼 뭐 중요하냐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저는 밥을 함께 먹으면서 쌓아가는 정서적 유대감이 아이의 삶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은 굳게 믿고 있어요. 저녁을 함께 먹는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를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이 꽤나 필요해요. 저녁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신랑의 퇴근시간에 딱 맞추어 밥과 반찬을 준비해야 하고요.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은 놀이터에 나가야 하는 아이들의 시간도 잘 맞추어 돌아와서 목욕도 마쳐야 해요. 그 와중에 아이의 간식량과 시간도 조절해야 하지요. 그리고 남편은 제시간에 돌아오기 위해 업무에 충실해야 하고 야근을 하지 않아요. 중요한 회식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약속도 잡지 않고요.


  처음에는, 남편과 저 대등한 관계에서 밥을 제가 한다는 것이 분한 기분이 들었어요. 다툼으로 번지기 전에 어디 한번 이해라는 것을 해보자, 신랑을 잘 살펴보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남편은 제게 밥을 하라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본인이 안 할 뿐이에요. 제가 안 하면 늘 외식이기에, 집밥이 먹고 싶어 진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집안일에는 밥 외에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다른 일들은 잘하고 있으니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더라고요. 이렇게 밥을 하는 주체가 되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했던 억울한 마음이 신기하게 아이를 낳고 나니 없어졌어요. 저도 놀랬어요. 아이의 이유식은 다 사서 먹일 거라고 늘 신랑에게 읊조리고는 했는데, 글쎄 제가 야채며 고기며 썰고 볶고 찌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루는 이런 제 모습을 아빠에게 하소연하듯이 하니 껄껄 웃으며 '그게 사랑이지. 엄마 다 되었네 우리 딸.' 하시더라고요. 아, 그렇네요. 밥은 사랑이군요.


  내 집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밥 한 상 내어주는 엄마들, 그들에게 밥은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따스운 밥 한 술로 그 마음을 대신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누구에게나 밥을 해주는 관계가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애써 핑계를 찾아보지만, 스스럼없이 얻어먹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하던 순간들이 그리운 건 달랠 길이 없네요. 그럼에도 우리의 사랑이 없어지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어요.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에요. 작은 다짐을 해 봤어요. 저들처럼 넉넉한 아줌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요. (기꺼이 밥을 해 줄 자신은 없으니) 아낌없이 밥을 사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밥이라는 것은 단순한 쌀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거예요.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고요. 어쩌면 그저 말 한마디 건네는 인사말이 될 수도 있겠군요. '밥은 잘 먹고 다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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