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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Oct 07. 2022

feat. 생긴 대로 살자


'이렇게 생겨 먹은걸 어째.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지.'
 

   회사에서 친한 동료랑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다 보면 대화 끝 늘 이런 말이 오가요. 사주팔자를 꼭 믿어서가 아니라 한국인에게는 사람마다 주어진 팔자가 있다는 정서가 있지 않나요. 그런 한국인 중 한 명이예요. 한때는 팔자란 없다.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라며 당당하게 살던 열정 넘치는 시절도 있었죠. 그런데도 이렇게 팔자 운운하다니요, 나 원 참. 저는 팔자라는 것이 옴짝달싹 못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사람마다의 고유한 성품이란 것이 있어서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삶의 측면보다는 내가 가진 고유한 형태에 집중하는 거죠. 아마도 저는 유전자와 같은 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동료와 구구절절 하소연한 내용은 이래요. 회사에 복직한 지 이틀째, 일 없이 앉아있는 게 너무 불편하다 하소연하니 언니가 혀를 끌끌 차지 뭐예요. ‘뭘 벌써부터 그래. 어련히 알아서 일을 줄까. 너도 나도 일 없이 철판 깔고 시간만 때우며 앉아있을 수 있는 위인은 못돼. 이런 날도 있어야지. 어떻게 일이 늘 있니. 게다가 네가 온 지 일주일이 되었어, 한 달이 되었니.’ 회사에서 솔직히 모두가 바쁘게 일하지는 않아요. 뺀질이는 어디에나 존재해요. 그리고 일복 넘치는 사람도 있고요. 네, 제가 일복 터지는 사람, 그런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일이 저에게 자꾸 넘어와요. 저는 기본적으로 일을 좋아하기도 하(했)고, 일에 대한 쓸데없는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인지라 이거 저거 확인을 하다 보면 구멍들이 보이는 거죠. 그 구멍을 저만 막으면 되느냐, 그게 또 아니에요. 협업이 필요한 일들은 이 부서 저 부서 확인할 일이 많은데, 하다 보면 제가 꼭 최종 확인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안 해도 되어요. 제 할 일만 딱 해도 되죠.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에요. 펑크 날게 뻔히 보이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둬요. 기한이 촉박하기라도 하면 마감을 앞두고 야근도 자주 했어요. 아니 구멍이 자꾸 보인다니까요.

    회사에서 저와 친해지는 사람들은 거의 쓸데없는 책임감으로 무장된 사람들이에요. 넘치는 일복에 허덕이는 사람들이죠. 잠시 짬 내어 커피 한잔 하며 얘기할 때는 서로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해요.

 ‘너는 그게 문제야. 그냥 적당히 일해. 그렇게 일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부품이 되어 이용만 당할 뿐이지.’

이게 한 발짝 떨어져서는 너무 명확히 보이거든요? 그런데 제 일이 되면 잘 안 보여요. 일이 돌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촤라락 펼쳐져서 눈에 들어오는 걸 어떡해요. 이럴 때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팔자예요, 팔자. 이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복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뭐. 어떤 면으로 포기하면 편해요.’

    같은 맥락으로, 저는 늘 가정주부의 삶을 영위하기를 꿈꾸어요. 남편에게 바깥일을 위임하고, 저는 안살림을 하는 거죠. 저를 잘 아는 친구는 또 이렇게 말해요.

 ‘너는 절대 그러고 못 살아.’

 맞아요, 인정! 저는 평생 경제력을 가지고 살고 싶어요. 내 돈 벌어 편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돈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면서 오는 성취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감사한 일이에요. 누군가는 제 모습을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밖에서는 사회의 경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제 자리가 있고, 안으로는 남편과 동등한 역할분담을 주장할 수도 있고요. (아니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누군가는 그러더라고요. ‘돌아갈 곳이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인 거야.’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능력 있는 여성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왜 나는 여자 남자를 떠나 안사람으로서의 차분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늘 달고 사는 거죠. 뭐, 집에 있는다고 차분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 튼요.

    꿈꾸어 바라는 것과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다를 수도 있지요. 하지만 내가 걷는 길과 늘 다른 방향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제 길을 똑바로 걸어갈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목도 아프고요. 나의 방향을 바꾸느냐, 아니면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거두느냐. 이 갈림길에서 나의 성향과 기질, 내면이 어떤 형상으로 차려졌는지 곰곰이 살펴요. 좋아요 인정. 여기서 나의 생태를 인정하기로 했어요. 저는 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생긴 대로 놀고 있는 거죠 뭐. 그러다가 팔자니 뭐니 운운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긴 대로 살다 보니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복이 많다고. 내게 주어진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평안한 상태로 지낼 때면 늘 주변에서 제가 복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이상하죠. 제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말이에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감사할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복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곰곰이 살펴보는 것은 나의 복을 살피는 첫 발걸음이 되겠군요. 남들이 가진 것만 보던 시선을 거두어 내게 주어진 복을 살피는 거죠. 생긴 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니요. 세상에 복 받기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요.


    새해가 되면 꼭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인사하는 언니가 있어요. 저는 이 언니의 인사말이 너무 좋아요. 복은 받는 자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짓는 자의 기쁨으로 향유할 때 더 크게 빛날 거예요. 우리 다 같이 복 많이 지어봐요. 새해, 아니 매일 복 많이 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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