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안녕을 바라며
feat. 무료한 일상의 소중함
전화가 울린다. 사촌언니의 연락이었다.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작은 아버지가 연락을 하셨다는데, 우선 알았다고 전화를 끊은 후 아버지와의 카톡을 열어본다. 아무런 연락이 없다. 할머니는 15년 정도 치매와 함께 방년 94세의 현생을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는 기억이 채 1분도 지속되지 않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복지사 분들이 오셔서 할머니 케어를 해 주셨는데, 코로나가 닥친 이후로 할머니의 건강을 이유로 아버지는 복지사 분들 도움 없이 홀로 할머니의 모든 거동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달, 아이들과 함께 갔을 때만 해도 스스로 화장실에 가실 정도로 건강해지신 느낌이었는데, 그새 약화되셨나. 순간, 할머니라는 큰 돌멩이가 사라짐으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 닥칠 상황을 생각해 본다. 한동안 어렵겠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온몸을 휘감고 돈다.
연락을 해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방방 뛰어노는 영상을 여러 개 보내드리고 모르는 척 전화를 걸었다. '아빠, 애들 너무 예쁘지 않아요?' 혹여나 자랑조차 손주에게 누가 될까 꾹 참고 있던 손주의 사랑스러움을 딸에게 한참 늘어놓다가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할머니가 지금 119에 실려서 병원에 가 계신 상태야. 아빠는 지금 할머니를 작은 아빠랑 119에 실어 보내드리고 창가에 앉아서 커피 한잔 하고 있어. 이럴 때는 단 커피를 마셔줘야지.' 나에게 아버지는 시인과 같은 존재이다.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는 법이 없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시다가 인형이 고꾸라져 넘어지는 것처럼 쿵 하고 넘어지셨단다. 아버지도 너무 놀라서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는데 한참 후에 할머니가 '나 좀 일으켜 내' 하시더란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려 할머니를 일으켜 앉혀드렸고, 이마가 부딪혀 멍이 조금 드신 것 말고는 크게 다친 곳은 없으셨다고. 그보다는 요즈음 식사를 못하셨는데, 식사를 못하셔 기력이 쇠해지신 것이 더 걱정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제 근처 사시는 작은 아버지에게 집으로 좀 와야겠다고 연락을 하셨는데 평소에 집으로 오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에 작은 아버지는 놀라서 달려오셨고, 할머니를 입원을 시켜서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아야겠냐고 하셨다.
'나는, 입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어.'
아버지는 지치신 것 같았다.
'할머니 사실만큼 사셨는데 뭐.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면 연명 치료하다가 돌아가시는 거지. 느이 할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어. 그러고 싶지 않다 이제는"
어느 날 작은아버지는, 어머니를 본인이 모시지 못한 것,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요새 본인과 어머니에게 참 잘하신다고. 작은아버지는 그래도 할머니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하셨고, 오늘 119 구급대원과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본인이 보호자로 가셨다. 아버지는 '너희 동생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 그러니 너희들이 잘 상의해서 하라'라고 하셨다.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내가 혼자 할머니 119며, 병원 따라다니면서 하는 것을 못하겠더라. 나 밖에 할 사람이 없으면 의무감에 하겠지만, 이제는 작은 아빠도 있는데 뭐.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조용히 커피 마시면서 손주들 영상 보고 있었지."
지난달에 두 아이 목욕시키느라 정신이 없던 순간, 아버지는 할머니의 밥타령과 싸우고 계셨다. '큰애야, 나 밥 좀 다오.' '지금 뜸 들이고 있어요. 조금만 계셔요.', '나 밥 먹으러 가도 되나?' '지금 뜸 들이고 있어요. 조금만 계셔요.', '나 오늘 한 끼도 못 먹었다. 배고프다.' '엄마 지금 뜸 들이고 있으니 조금만 계셔요. 제가 불러 드릴게요.' 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대화가 10번 정도 오갔을까, 결국 할머니는 밥도 안 준다며 내 집에서 나가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셨다.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닫은 채 방금 할머니가 식사를 마치신 그릇 설거지에 집중하셨다. 이제 갓 두 돌 된 귀여운 아가가 하는 반복되는 행동에도 2,3번 만에 그만하라며 언성을 높이는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아버지가 진정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본인의 삶으로 인생을 가르치신다. 아버지가 부모를 모시며 살아가는 것도 그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 아빠가 본인 스스로 삶을 잘 꾸려내어 마무리하셨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부모님이 하신 것처럼 언젠가 그분들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에 기꺼이 함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아빠는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고, 말로 글로 가르치신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온몸으로 그 세월을 굳건히 살아냄으로써 보이는 가르침이 있더라. 그 가르침은 글의 활자나 말의 소리보다 더 질기고 강해서 배척할 수가 없다. 시나브로 체득되는 삶의 깨달음이다.
전화를 끊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카톡이 왔다. 근육이 놀라서 긴장하였을 때 나오는 수치 및 염증 수치가 약간 높으나 젊은 사람이면 괜찮은 정도라고. 다만 초고령이어서 검사는 몇 개 더 해보겠지만 지금 할머니는 입원을 해야 하는 이유를 결과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고 하셨단다. '다행이에요. 아빠가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 있네.'라는 말에 그저 고맙다고만 하신다. 나는 진심으로 할머니의 안녕을 바란다. 내가 할머니를 진정 위한다면 이 질기고 질긴 삶 고통 없이 떠나시기를 바랄 터이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를 위해 할머니의 안녕을 바란다. 지치고 힘든 나날일지라도 돌보아야 할 존재가 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없던 힘을 솟게 해 주는 법이다. 나는 아버지가 할머니를 돌보시며 건강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시길 진정으로 바란다.
어쩌면 곧 닥칠지도 모르나, 당장은 아닌 이 해프닝으로 인해 무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무척이나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