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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균형 Nov 12. 2022

아무래도 괜찮다.


    남편(T)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고모가 있다. 지금은 시부모님과도 따로 살고 계시지만 가족행사에는 늘 함께 하시고 우리도 잘 챙겨주신다. 괜스레 친근한 느낌이 들어 나도 고모님을 꽤 잘 따르는 편이다. 곧 고모님의 생일인데 일정을 아무도 챙기지 않아 T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빠가 전화 좀 해봐.' T는 가족행사에서도 절대 나서지 않는 사람이다. 늘 그저 따르기만 한다. T는 자기가 왜 하냐고 한다. '그럼 내가 하리?' T는 투덜거리며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큰 조카가 전화로 약속을 잡은 것은 고모님에게도 낯선 풍경일 것이다. '얘가 웬일이지.'   


    그런데 그 이후로 내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 T가 자발적인 마음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 나의 입김으로 인한 반응이라서 렇다. 자기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기에 내년에도 같은 상황이 아마도 반복될 것이다. 나는 찌르고 T는 움찔하고. T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의 반응이 못마땅한 것은 분명 아니다. 사건이라 말하기조차 민망한 이 작은 행위는 T라는 사람에게 낯선 패턴이었고, 그것이 내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겸연스럽기만 하다. 사전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순전히 내 걱정에서 비롯된 성화였다. 혹시나 주말 계획이 어긋나 빈 하루가 되어버릴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혹시나 그날 고모에게 다른 약속이 생겨버린다 한들, 그것이 과연 큰일일까. 고모의 생일은 다른 날 축하해 드려도 되고, 우리가 집에서 휴식을 취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떤 상황이라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데,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아집으로 인한 재촉이 평소 T와 다르게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연출한 모양이 되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연락 덕분이다. 내가 결혼을 한 순간부터 아버지는 매일 아침 내게 *톡을 보내셨다. '우리 딸 잘 주무셨어요. 우리 사위 잘 주무셨어요.' 매일 똑같은 문구로 아침마다 알림이 울렸고, 사실 너무 귀찮았다. 매일 똑같은 문장으로 묻는 안부에 똑같이 답하기도 애매하다는 생각에 답장을 하루 이틀 건너뛰다가 어느 날부터 그의 연락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변함이 없으셨다. 늘 한결같이 딸의 안부를 물으셨고,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한 문장이 추가되었다. '우리 J, B 손자님 잘 주무셨어요.' 매일같이 묻는 안부가 영상을 보내라는 묵언의 압박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나마 가끔 아무 설명 없이 보내는 손주의 영상에는 매번 고맙다고만 하셨다. 'J, B 손자님 너무 귀엽습니다. 우리 딸 고맙습니다. 우리 딸 대단합니다.'


    사실 그때는 밤낮으로 보채는 어린아이를 돌보며 완전히 뒤바뀐 일상에 적응하기도 버거웠다. 아이를 돌보는 일상이 나 본연의 모습을 빼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낮아진 자존감에 사회로 돌아갈 자신도 없었고 엄마가 되었다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덮쳐올 때였다. 이때 아버지의 연락이 웅크려 있는 나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리 딸 대단합니다. 우리 딸 고맙습니다.'  

답장을 바라지 않고, 채근도 하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딸을 응원하는 아빠의 따뜻한 마음이 그제야 느껴졌다. 아빠의 응원을 매일 받으며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렵지만 기쁜 일이구나. 대단한 일이구나.  


    수년간 지속된 아버지의 안부가 효과가 있었는지 지금은 내가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아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리고 손주의 영상을 하나씩 보내드린다. 아버지는 매일 보내는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버지의 답장은 아직도 한결같다. 'J, B 너무 예쁩니다. 우리 딸 대단합니다. 우리 딸 고맙습니다.' 가끔 영상에 사위가 등장하면 사위에 대한 칭찬도 곁들인다. '우리 사위 너무 예쁩니다. 사위 고맙습니다. 이런 멋진 사위를 얻다니 우리 딸 대단합니다.'  


    귀찮음에 연락을 무시할 때에도 아버지는 서운함을 토로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가끔 찾아뵐 때, 답을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그럴 거 없다며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아무 채근도 없이 무심한 딸의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셨다. 아버지가 한 일은 마음과 성심을 다해 응원한 것뿐이었다. 아버지의 태도는 말 그대로 '무위자연'이었다. 반면 나는 신랑에게 무언가를 해서 비자발적인 행동을 유발했다. 그러니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무위로 인해 얻는 도가 여기 있다니. 나는 참으로 좋은 스승을 곁에 두고 있구나.


    아마도 앞으로 나는 신랑을 찌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심호흡 세 번 하고 찌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방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방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까 싶다. 언제 어디서라도 행복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어떤 선택도 괜찮다. 그러니 아무래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가장 적절한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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