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비애의 문을 열다.
feat. 뭘 짠하고 그래.
퇴근이 늦었다. 집에 도착하니 신랑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진이 빠진 것이 틀림없다. 오래간만에 아이들을 홀로 재운 신랑이 같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것이 용하다고 생각했다. 낮에 아빠랑 잘 놀다가도 잘 때는 꼭 엄마 팔 하나씩 붙잡고 자는 아이들이다.
코로나와 함께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회사 식당에는 투명 가림막이 설치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회사 식당에 설치되었던 가림막은 내가 복직한 다음날 철거되었다. 코로나가 공식적으로 종결되지는 않았지만 끝나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거리두기도 해제되었겠다, 가림막도 거뒀겠다, 삼삼오오 칠칠구구 저녁 약속이 생겨나고 있는 듯했다. 회사로 다시 출근한 2주 만에 회식이 잡혔다.
집에 있을 때는 술이 그렇게 마시고 싶더니, 막상 회식이 잡히니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핑계로 차를 가져갔다. 하필 퇴근시간 즈음에 담당업체와 통화를 하다가 회식장소에 살짝 늦었다. 비어있는 자리는 임원 옆 자리뿐이었다. 끙. 술을 안마시기 위한 알리바이는 2개나 있었는데 소용없었다. 차를 가져온 사람에게는 부서장께서 대리를 친히 불러 비용까지 지불해 주셨고, 사랑니를 부셔 빼내어 잔뜩 부풀어 오른 내 오른쪽 뺨은 알코올로 소독했다는 라떼의 과거를 회상하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술은 마시지 않았다. 골프 관련 얘기를 하시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옛날 얘기를 하시는 데에도 끼지 못했다. 술이라도 반잔 걸쳤으면 모를까, 쓸데없이 떠들며 분위기를 띄우는 재주는 안타깝게도 내게 없다.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의 호의를 베풀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가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임원께서는 나의 식사를 걱정해주셨고, 술 대신 음료수를 따라주셨다. 건너편에 앉으신 부장님은 분위기를 위해 쉴 새 없이 말씀하셨으며, 집에 오는 길에 함께 했던 선배는 몇몇 동료와 가벼운 치맥 자리를 마련하자 하셨다. 이 모든 호의에 웃으며 화답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애를 써야 했다.
아이들이 잠들어 고요한 집, 방문을 열어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괜히 쓰다듬어 보고, 볼뽀뽀도 해 본다. 오늘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일어나 보니 엄마는 회사에 가버린 후였고, 엄마가 오기도 전에 아가들은 잠에 들었다. 어쩌면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는 하루는 어떤 하루였을까. 코끝이 찡해진다. 나는 오늘 최선을 다했다. 아마 아이들도, 아빠도, 아이들을 보아주시는 나의 엄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길까.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상황을 마주해야 할까.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사랑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여백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부족함을 느낀다면 아이들의 서운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더 큰 애정으로 채워주고 싶은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이런 마음을 신랑에게 전한다.
'엄마 없는 하루를 보냈을 아이들이 짠해.'
신랑은 힐끗 보더니 이내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뭘 짠해, 내일은 같이 있을 건데.'
아, 아들은 이렇게 키워도 되는 거구나.
아니, 아들은 이렇게 키워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