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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May 03. 2019

지어 입기 _ 1  

만들어 입는 이야기.

사실은, 옷을 만들고 있다.
관련 전공도 아니고 현재 직무와도 관련 없지만, 뜬금없는 관심사야 별 것인가. 무언가를 만들며 느끼는 만족감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선생님께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넌 글을 정말 잘 쓰는구나'였으나 실은 일단 많이 쓰지를 않았고,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면 게을렀기에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다가 내지 않은 적도 꽤나 있었다. 그래도 가장 결정이었던 일은 고학년에 오르며 서울시 대표로 동시 대회를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였다. 뭔가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에 끝내 장소에 나가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 번을 그러고 나니 쉽게 글을 쓰거나써서 제출할 수가 없었다. 잘하고 싶었으나 마음뿐이었거나 그 마음이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담 없이 방학 숙제로 냈던 작품들은 '과연 00야.' 하는 말을 들었다. 꽤나 스케일 있고 또 꽤나 정교한 작품을 완성해서 짠- 하고 드러냈다. 어떤 때는 골판지 공예, 어떤 때는 종이접기에 꽂혔었다. 초등학생이 스스로 고른 것 치고는 살짝 뜬금없는 주제이긴 했지만 '꿩 대신 닭'으로 인정받은 그런 작은 손놀림이 또 취미가 되어 20대 후반을 부여잡고 있는 요즘까지 이어지는 것 보면 역사적이기까지 하다. 

지금 나는 여기에 글을 쓰고, 옷을 만든다. 요는, 글도 쓰고 있다는 것이지. 언젠가는 '정말 잘 써' 보리라. 글밥을 먹고살아보리라.  그전에 '만들어 입는 이야기'부터.

간단히 내가 가장 아끼는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보고 '만들어 입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평범한 20대 후반인 내가 좋아하는 여러 것들을 묶어보면 크게,

입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움직이는 것. 이 네 가지 정도일 것 같다. 


나도 브런치에 글을 쓰는 다른 작가들처럼 나만의 매거진을 만들어서 색을 확실히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고민하다가 결국에 아직 제대로 된 매거진을 시작하지 못했다. '보는 것' 분야에 데이터를 조금 쌓아둔 것 외에는.


관심사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다가도 저렇게 4가지의 카테고리에 묶어보니 앞으로 할 이야기도 많을 것 같다. 먼저 시작하는 이야기의 큰 제목은 '지어 입기', '만들어 입는 이야기'로 부제를 달아보았다. 

조용히 둘러앉아 오손도손 옷을 만드는 모임을 함께 그려보며.


옷을 보고, 사고, 입는 것을 좋아해 온 약 20년 (스스로 옷에 대한 주관을 피력하기 시작했던 유치원생 때부터) 동안 많이 사기도 입어 보기도 그리고 옷이 좋아 이런저런 쇼핑몰과 이런저런 나라의 브랜드와 그리고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품 주위를 기웃기웃했었다. 종종 특이한 옷을 구입해서 가지고 있기도 했는데 어쩌면 실제로 입고 나가는 것보다 그 옷을 간직하고 관찰하는 것에 더 큰 행복감이 있었는지도. 그저 그렇게 살다가 ㅍ부관리실 원장님과 친해지면서 천연 비누와 아로마 공예를 접하게 되었고 디자인반 수강을 통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보았다. 그때부터였다. 생각한 것을 눈앞에 만들어 내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그래서 옷을 만들어볼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How dare!) 2018년 8월에 처음 바늘을 잡았고 평균적으로 두 달에 한 작품씩 완성하고 있다. 2018년 8월 전에 바늘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실과 시간이었다. 할 생각이 없어서 던져두었던 바지 만들기 숙제를 첫사랑 그 소년이 주워서 대신 만들어 줬었는데. 어디 있니? 그때도 하기 싫은 것은 심드렁하게 던져버렸었고 그 옆에는 착하디 착한 친구가 곁을 지켜주었구나. 힘들다, 힘들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복 받았고 즐거이 살았었고, 살고 있네. 지금은 너무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한 작품 한 작품 옆에서 완성을 도와주신다. 매번 신경 써 주시고 계속 다음 재밌는 일을 함께 벌이며 옷 만들기를 내 일상에 넣어 주셨다. 선생님과 나의 방향성이 맞는 것도 축복이다. 이런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1년 가까이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 이제 본격 첫 작품 설명을 살짝 해보고, 다음 편은 어떤 작품으로 선정할까 생각해보려 한다. 

H라인 스커트, 플레어스커트, 두꺼운 모직 V넥 탑, 그리고 너무너무 마음에 쏙 드는 진주 단추 플레어 탑 등을 만들었었다. 이번 체크 셔츠가 가장 최신의 작품이다. 소품으로는 매일 들고 다니는 에코백을 만들었고.


사실 원단 시장에 가서 내가 고른 원단으로 발주를 넣었는데 원단을 잘못 골라서... 셔츠 가봉을 보려고 이모한테 받아온 원단으로 만들기 시작한 시험작이 완성작이 되었다. 정말 혼자 만들어서 대충 입고 다니겠지 생각했던 옷에 디테일을 넣고 하나의 옷이 되다니. 바로 입고 야학 수업을 다녀왔더니 애착이 더 생기고 있다. 

기본 셔츠

카라 : 파자마 카라

디테일 : 세로로 이어 붙인 조각 원단


조각조각 나누어서 진행하다 보니 2시간씩 6번에 걸쳐 완성.

미싱은 싱거!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브라더 미싱을 이용했는데 확실히 싱거가 힘이 좋다.


선생님과 함께 만들 때는 싱거를, 나 혼자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 볼 때는 집에서 부라더 미싱을 이용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과정을 앞으로 어떻게 기록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본다.

먼저 어떤 작품을 만들지, 내 수준에서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를 선생님과 함께 고민한다. 만약 모임이라면 모임장님이 그 역할을 해주시겠지?


그리고 패션 일러스트에 특히나 강점이 있으신 우리 선생님께서 내가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가시화해주시면 부분 부분 수정을 통해 가안을 완성하고 패턴을 떠 주신다. 그럼 그것으로 시접을 그리고 패턴을 잘라 낸다. 이때 시접은 몇  cm인지, 몇 개씩 떠야 하는지 세심하게 봐야 한다. 원단은 한정적이다. 실수도 너무 많이 하면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하게 된다.


디자인 구상 

일러스트 

수정

패턴 

재단 

재봉

부수적인 디테일 (단추 작업 등)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옷이 완성된다. 각각의 과정이 꽤나 재미있고 보람되어서, 

누군가와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취미이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이때만큼은 평화를 얻을 수도, 또 이때만큼은 의욕을 불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소중하고 신기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란 것은 장담할 수 있다. 

완성하지는 못 했지만 다림질하면 녹아버리는 원단을 셔츠로 만들어보겠다고 참 열심히 재단을 했다. 

회사 비밀의 방에 들어가서. :)

그래도 덕분에 체크 원단을 재단할 때는 좀 더 수월하게 했던 것 같다. 

구성은 기본적인 셔츠를 따랐지만 

디테일은 내가 넣고 싶은 대로 넣어 보았다. 그래야 진짜 내 옷이지 :-)


좋은 선배의 생일 선물로 둘이 함께 좋아하는 옷을 사는 데에 지분을 투자했다. 돈 많이 벌어서 5년 안 생일에는 그냥 하나를 통째로 사줘야겠다. 기분 좋게 '옷 사줬다' 하고 싶은데 디테일하게 적을 말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빈정이 상해버렸다. :(


이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닌데, 체크 패턴을 조각조각 찢어 누더기 기운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일본 N사의 옷인데 선배는 사서 입게 하고 나는 비싸서 만들어 입었다. 사실 이 옷의 출발은 정말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사진상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누더기 디테일! 어떻게 이어 붙여야 풍성한 느낌이 날지 고민하다가 두 세 줄로 나란히 이어 붙여서 디테일을 완성했다. 

카라 

나는 뚜렷하게 원하는 디자인이 있었고,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이때 진행해야 하는 커리큘럼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규리씨 카라를 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어렵다. 이 정도로 언급해주셨는데 엄청 걱정했던 것 보다는 수월하게 나왔다. 


선생님이 오늘 옷을 완성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카라예요. 저희 학교에서도 카라 때문에 낙제받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봉재 하시는 분들한테 들고 가서 이 카라 처음 만들었다고 하셔도 인정받으실 수 있는 카라를 만드셨어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주 과찬을 해주셨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 또 다른 작품을 빨리 만들고 싶어 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득 저번 주 어떤 사람에게 받은 칭찬이 머릿속에 남아서 '그래도 버텨보자, 해 보자'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을 떠올려본다. 

 무언가를 하면서 독려받고 인정받는 것이 생각보다 기억에 많이 남고 실제로 힘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또 만나서 하는 모든 일은 아마도 이런 기제를 이용해서 발전하고 또 일상에서의 치유를 이어가는 것 같다. '모음'의 힘이지 않을까. 세상은 정말 너무 넓고 이 것 저 것 다양해서 가끔 내가 뭘 잘하고 어떤 부분이 특히나 예쁜지 등을 잊게 되기도 한다. (요즘의 내가 아주 그렇다.) 그래도 꾸준히 사람을 모으고 만나고 소통하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분명 무언가는 남는다.


 내가 이 취미에서 남긴 것은 작품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남기도 하고 마음이나 지식이 나아지기도 하겠지. 나는 두 마리 토끼를 그래도 잘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파자마 카라도 생각보다 더 예쁘게 나와 주었고 :)

어깨, 소매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게 재봉하면서 집히는 부분 없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는데, 

생각만큼 나와 주었다. 


앞판 디테일

가장 먼저 완성된 디테일 부분. 이 옷의 아이덴티티는 여기에 있다!

완성!

만나서 너무 반갑다 사랑스러운 내 첫 카라 셔츠야.

완성 전의 몇 주 동안 -

제법 옷의 모양새를 갖추고 나서도 꽤나 기다려서 완성되었다. 

바로 야학에 가지 않고 굳이 굳이 집에 들러서 만들러 갈 때 입었던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갈아입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브런치X문토에 참여하면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임은? 이라는 질문에 답하고 넘어간다면

누구 하나 배제되지 않고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그런 모임이었으면 한다. 조금 더 상상해보면, 조용하고 좋은 공간에 좋은 사람들을 몇 모아 놓고 아로마 이야기를 하며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도 싶고 그 날 그 날 드라마를 정해놓고 내가 글을 써왔듯이 되짚어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고도, 그리고 이렇게 옷을 함께 만들고 싶기도 하다. 옷이 아닌 소품이라도 좋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천연 비누에 자기 이미지를 담아보는 작업을 하는 모임을 가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이런 마음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서로의 안녕을 가까이서 바라며 함께 무언가를 만들거나 이야기해보고 싶다.


에서 취미로, 취미에서 모임으로 '지어 입기'의 첫 글은 여기까지 흘러 왔다. 

옷 만든 흔적을 글 한 편으로 남기려다 글 쓴 사람이 치유받고, 힘을 얻어서 쉼표를 찍는다. 

다음에는 내가 제일 아끼는 탑을 만들었던 이야기로 2편을 이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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