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오일 교체로 나의 애마 캠리를 맡겼다. 도요타 서비스 센터에서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려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기에 잠깐 망설이다 길을 나섰다. 집까지 걸어서 한 시간 남짓…
걸을 만했다. 아니 한국으로 돌아가기전에 한 번쯤 걷고 싶었다. 해마다 가을, 커다란 아름드리 노란 은행나무 길이 멋진 무어 팍 거리를 한 번쯤은 걸어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동안 수십 번도 더 왔다 갔다 했던 길이다. 해도 쨍쨍이고 바람이 불어서 살짝 망설이다 용기를 내 보았다. 3마일이 조금 안되니 평소 운동삼아 걷는 길 정도였다.
수십 번을 차 타고 다니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이름 모를 예쁜 꽃들과 집들, 늘 다녔던 몰과 가게들, 식당, 공원, 나무 하나하나가 출국 한 달을 앞둔 나에게 모두 의미 있어 보였다.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 핸드폰 배터리도 없어서 우버를 부를 수도 없는데.. 비가 오는 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가로수들이 하도 커서 그나마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를 조금 막아주기는 했다. 다행이었다. 빗줄기가 굵어서 눈으로도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 돌아갈 수도 없을 만큼 가고 있었다. 잠시 고민을 했다. 이미 반 이상 걸어왔기 때문에 계속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뭐 소나기 라도 오겠어? 하며 다소 조급하게 걸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할지 계속 가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참 어렵고 난감한 일이다.
그렇게 가는 도중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아줌마를 만났다. 그 아줌마도 비를 맞고 걷고 있었다. 나만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비 맞는 사람이 또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에 위안이 된다.
그 비도 잠시.. 다시 파아란 하늘이 보이면서 해가 난다. 감사했다. 앞으로 걸을 길이 꽤 있는데 계속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그래도 길바닥 곳곳에 비가 온 자국들이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비를 맞기만 했던 나를 겸손하게 했다. 그저 해를 주심에 감사하며 지금 이 길을 가는 것이 마치 인생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 다가왔다. 한 시간 되는 이 길이 4년 동안의 내 미국 삶의 여정 같았다. 때로는 비도 맞고 때로는 햇살도 받고, 때로는 예쁜 꽃들도 보고 때로는 빗 자국을 보며 또 올 수도 있는 비를 기억하고..
시원한 바람으로 젖은 옷이 마르고 있었다. 옷에 났던 빗 자국이 마르면서 점점 없어진다. 언제부턴가 오후 한때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보이지 않는 바람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조금은 아프고 창피한 빗 자국.. 그 창피한 빗자욱을 마르게 해주는 것은 고마운 바람이다.
엄마가 예전에 여행이 아름다운 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즐거운 건 나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볼린저를 앞둔 8차선 로렌스 도로의 횡단보도가 나왔다. 보행신호가 켜지고 뚜벅뚜벅 걸었다. 모든 차들이 멈춰 서 있고 나 밖에 걷는 사람이 없어서 운전자들로부터 시선을 받는 것 같아 조금 민망했다. 평소 운전하던 나도 운전석에 앉아서 그렇게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사람을 본적이 꽤 있다. 걷는 나를 멍하니 지켜보거나 또는 딴생각으로 내가 안 보이는 운전자도 있을 것이다. 운전자에 따라 본 듯 안 본 듯하기도 할 것이고 또는 주의 깊게 보기도 할 것이다. 걷는 내가 알던지 모르던지 나의 가는 길을 지켜보는 사람들.. 그것에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덤덤히 내 길을 가리라..라고 건너면서 생각했다.
4년 전 이맘때 이 곳 산호세에 온 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무작정 집을 나서서 길을 걷던 적이 있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집도 잘 기억 못 하면서 걸었다. 그때도 역시 핸드폰이 없었다. 그냥 감으로 걷는 것이다. 이 집 저 집, 이 꽃 저 나무들을 보며 즐겁게 가다 보면 내 집이 나오겠지 하며 걸었다. 그러다 집을 향하는 운데리치 길을 지나쳤다. 하염없이 가다가 문득 잘 못 왔구나를 느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길도 모르면서 핸드폰도 없이 나섰구나 싶었다. 며칠 전 남편과 처음 온 이 동네를 산책하며 본 예쁜 2층 이 보였다.기억을 더듬으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지내는 나의 생활도, 미국에서의 4년을 살았던 내 삶도, 아니 내 인생 전체도 이와 같으리라. 손에 쥔 것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을 때 삶은 더 기대되고 스릴 있고 익사이팅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