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 : 1~10
1절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성경을 읽을 때 가끔 엉뚱하게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다.엉뚱과 삐딱의 그 어디쯤에 있을 때도 있다. 오늘도 세가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돌 문이 왜 옮겨졌을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돌 문을 열고 나오셨기 때문인가? 아님 마리아나 제자들이 들어오기 쉬우라고? 다음 생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그 중 나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예수님의 어머니 머리아,그녀를 모시게 되는 요한이 기억에 남는다.그리고 오늘 나오는 마리아다. 이들은 배반도,어떤 외침도 하지 않고 묵묵히 예수님을 생각하고 행동에 실천한 사람이다.묵묵히 뒷일을 수습하는 니고데모와 요셉은 남성답고 아침 일찍 부지런히 향유를 바르러 갔다가 베드로에게 달려가 알리는 마리아는 여성답다.(극히 개인적 생각) 세번째로 요한은 베드로처럼 이름을 쓰지 않고 왜 '사랑하는 제자'라고 했을까? 베드로도 사랑하셨을 텐데.. 어쨌든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생각지 않는 이들의 모습이다. 경황도 없고 이전의 말씀이 기억도 안 나고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다.어제까지 말씀에 늘 등장하시던 예수님은 없다.고아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9~10절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남아서 우는데 제자들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베드로와 요한은 극단적인
T인가 보다.어떻게 빈 무덤을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지? 지금 이들의 상태는 예수님도 성령님도 없는 상태이다.아무런 생각도 깨달음도 없는 상태인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며 성령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믿는다.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도우시고 깨닫게 하실 것을 믿는다. 그들이 집에 돌아간 것은 '말씀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에 씌어있다. 말씀을 늘 기억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주님.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빈 무덤을 상상해 봅니다.승리하시는 어린양 예수를 찬양합니다.그리고 구원자 되시는 어린양 예수님을 더 알기를 원합니다.오늘도 나의 삶에 주인 되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섭리로만 세상이 다스려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