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좋은 교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소풍 Jan 10. 2024

학교

10년지기 인연을 정리하며..

 휴직 포함 30년 가까이 했던 교직생활중 절반을 이 학교에서 보냈다.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큰 아이와 둘째를 이 곳에서 낳고 대학을 보냈다.학교폭력이라는게 생기면서 인성부장겸 학폭업무를 맡았다.교육부 사례집에도 실릴만한 엄청난 학폭사건이 있었고 그 덕분에 법정도,변호사 사무소도 여러번 다녔다.그 때야말로 학부모의 갑질에 시달렸었는데 지금생각해보니 변변하게 교권보호라는 것도 모르게 다급하게 보냈던 기억이 있다.


4년의 휴직후, 강박 및 사회성 경계성 학생이 있는 문제가 심각했던 학급을 맡으면서 곪았던 학급의 복합적인 문제를 다시한번 직면했다.9~10월 두달 매 시간 학급의 폭력성 문제로 선생님들이 계속 보결을 들어오면서 보조를 해 주었고,그 학생 때문에 학부모들의 주도로 등교 거부사태가 있었으며 처음으로 3명을 데리고 수업을 한 경험도 있다.학폭이 열리면서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음에도 거부를 하여 계속 등교하는 그 학생을 학교는 계속 분리하여 지도했고 급기야 행정소송으로 다시 교실에 들어오게 되었을때는 12월 한달을 두명의 학부모를 매일 뒤에 앉으시게 하고 수업을 진행했다.원래 있었던 담임교사 조차 포기했던 학급이었고 아이들은 다시금 담임선생님이 바뀔까봐 불안증세도 있었다."내가 끝까지 같이 있을거야." 하며 2학기에 느닷없이 담임이 된 나는 아이들과 약속을 했고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코로나도 걸려서 온 학교가 뒤집어 지기도 했었고, 그 후로도 2~3년간은 겪어보지 못했던 여러 수업의 형태로 어려운 시국을 잘 헤쳐나갔다.


 23년도는 10년만에 있었던 이 학교의 마지막 해였다.20년도 2학년을 맡아 제대로 가르쳐보지 못했던 아이들과 좋은 끝맺음을 하고 싶어 5학년에 자원했고 행복하고 기쁜 나날들이었다.어느 해 보다 많이 울었던 9월 4일 사태가 생기고 우리 학교도 여느 학교와 같게 여러 갈등 들이 있었다. 이제는 친구,후배들이 교감,교장에 가는 이 시기에 나는 아직 교단을 지키고 있다.아직은 아이들과 수업을 만들어가는 교실이 행복하고,함께 하는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소통이 즐겁고 보람있으며,무엇보다 학교급식이 좋아서이다.어쩌다 보니 이 학교에서 10년을 지내게 되었다.이제는 떠날 때...자칫 운전에 정신줄 놓으면 출근길에 자동적으로 이 학교에 올 지도 모른다.많은 선생님들을 이 곳에서 퇴임식 해 드리며 나 또한 그러리라고 마음 먹었는데 잘 모르겠다.

다만 나와 40대를 함께 해던 이 학교가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기도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해 12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