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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소풍 Jan 19. 2024

삑사리를 내도 1등

싱어게인 3

나는 홍이삭을 좋아한다.크리스챤 마인드를 기본으로 두고 있어서도 그렇고 노래에 깊은 진정성이 느껴져서 그렇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에서 깊이도 볼 수 있다.그런 그가 어제 마지막 파이널에서 실수를 했다.점수에 상관없이 심사위원들은 '유통기한이 없는 가수'라고 이야기 했으나 기대했던 우승에서 멀어지는 6위에 그치고 만다. 워낙 가창 실력이 있었기에 실수는 그닥 중요하게 아닐 수 있지만 점수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그가 우승자가 되었다.요즘 가수들은 노래만 잘해서 유명하거나 대중들에게 어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그 가수만의 독특한 음색, 노래의 진정성, 음악적 매력, 그리고 어느 정도의 외모, 삶의 여정 등 여러 요소들이 있는 듯하다.그래서 이번 싱어게인3 마지막 7인들은 저마다 삶도 독특하다. 


하긴 인간의 어떤 삶인들 독특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7인들 역시 외롭고,어렵고,번뇌하는 가운데 ’노래‘라는 보석을 다듬어 온 것 같다.그리고 대중들이 느끼는 것은 많이 비슷한가 보다.온라인,문자투표에서 파이널 1위를 했던 소수빈을 2배 이상으로 뛰어넘어 결국 홍이삭은 우승자가 되었다.(물론 소수빈의 삶도 보니 결코 쉽지 않았다) 


우간다에서 교육 선교사로 섬기는 부모님도 오랜만에 아들의 파이널을 보러 귀국을 하였다.얼마나 대견하고 마음이 안타까웠을까.

경제적여유도 없이 두 아들을 외국으로 보낸 나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보고 싶고 그립고 안쓰럽고 짠한데, 이미 어린시절부터 떨어져 지낸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부모의 얼굴을 비춘 카메라를 보며 잠시 생각해봤다. 


가까이에서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자만이 부모가 아니다. 떨어져 지내서 뼈속깊이 아련하고 그리운 그 자식을 가슴에 품고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사는 부모의 심정을 나도 조금은 안다.


어쨌든,가수 소향이 불러서 인상깊었던 조용필 원곡의 ’바람의 노래‘는 앞으로 다가오는 자신의 인생을 노래한 것 같았다.전에 불렀던 ’I LOVE YOU‘ 노래에서는 약간의 섹시함도 느껴져서 몇 번이고 들었다. 홍이삭의 '바람의 노래'는 나도 함께 부르는 마음이었다.게다가 평소에는 절대 하지도 않는 문자투표에 뮤직카우에도 투표를 하는 열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사실 내 음악 리스트에 있는 노래는 소수빈의 ’머물러주오‘다.노래도 느낌도 너무나 좋았다.그러나 어제 불렀던 ’한번만 더‘는 별로였다.심사위원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최고 점수였지만 나의 홍이삭에 대한 사심을 굳지 꺼내지 않아도 ’한번만 더‘의 느낌은 가사가 주는 내용과 다소 거리가 먼 노래였기 때문이다. 헤어지려 하는 연인에게 부르는 간절함 보다는 남미리듬의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가요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특히나 절대음감이 있는 나는 어떤 장르든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악보를 그린다.교향곡이나 앙상블을 들을 때는 악기별로 따로따로 들릴 때가 있어서 몰입이 안 될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가요를 들을 때는 유독 가사에 집중한다. 그래서 현타가 오는 가사에는 썩 공감하지 못하는 편이다.’헤이 한번만 더 나를 봐라봐~ 그때의 숨결 들리지 않아‘를 그토록 리듬까지 바꿔가며 즐겁게 부르다니..물론 그 즐거움 안에서 조차 아픔을 찾을 수 있다면 할 말은 없다.그러나 나같은 평범한 대중은 잘 안느껴진다.


 내가 사랑하는 그 가수가 우승자가 되었다.삑사리를 내고도 우승자가 되었다.어찌보면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한번의 삑사리로 망가지지는 않는다.살아왔던 삶에서 깊은 깨달음과 진실성이 있다면 한 번의 삑사리 정도는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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