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Oct 25. 2022

부르심과 떠남

저는 대학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이어서 전두환 정권의 폭압 정치를 경험했습니다.

거리를 걷다가 불심검문을 당해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공부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TV에선 삼청 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이 받는 훈련을 보았습니다. 

자유를 꿈꾸었던 대학 시절이었지만, 자유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선교하러 간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교는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어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에메랄드 빛 바닷가 야자수 나무 그늘에서 쉬는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입니다.

비자 얻기도 쉽지 않고, 외국 나가려면 특별 반공 교육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서 선교한다니, 저는 그들이 현실을 외면한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선교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언어와 문화와 풍습을 배워야 합니다.

국내도 불안했지만, 외국은 더욱 불안했습니다.

선교는 자발적으로 현실의 편안함을 떠나는 것입니다.


부름 받았다는 것은 떠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마틴 루터는 수도원을 떠나 개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본회퍼는 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가 나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안전 대신 불안을 선택했습니다.

부름 받았다는 것은 가는 것이고, 찾는 것이고, 바라는 것입니다.


길이 있어 보이지 않아도

어둠이 덮여 있어도

불안하여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자발적으로 물러날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을 때

원치 않는 곳에서, 막막하고 불안한 곳에서

하루하루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기다리는 것 또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러남을 통하여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를 느끼고

자신의 상처와 깨어진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래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매거진의 이전글 아우라의 몰락, 아우라의 상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