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체 - 권력에의 의지
영국의 정치철학자 로드 액튼(John Dalberg-Acton 1834~1902)은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니체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권력은 악한 것인가? 니체는 모든 생물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곧 권력에의 의지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권력에의 의지야말로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말한다. “약자가 강자에게 복종하는 것, 그를 설복시켜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약자에 대하여 더 힘 있는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의지이다. 주인이 됨으로써 얻는 이 기쁨은 살아 있는 자로서는 포기하기 힘든 일이다.” 미생물에서부터 모든 생명체는 자기 나름의 권력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니체는 그 의지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고 권면한다. 스스로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위버멘쉬(Ubermensch, 초인)라는 것이다. 니체는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죽어가는 인간을 경멸하였다. 니체는 초인을 원했고, 모든 사람이 초인이 되기를 소망했다.
우생학(eugenics)은 인류를 유전적으로 개량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은 뒤 크게 감명을 받은 영국의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은 동식물도 형질개선을 통하여 우량 품종을 만들어 내듯이 인간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흘러오고 있었다. 플라톤도 그의 책 ‘국가’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시켜야 하며, 건강한 아이는 양육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은 죽여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서양 역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흘러오다 히틀러에 의해서 전 국가적으로 시행하였다. 히틀러의 우생학 프로그램은 장애인들, 정신병자들, 게으른 방랑자들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서 그 초점을 유대인에게로 확장하였다. 히틀러에 의하여 왜곡되긴 했지만, 니체의 이상인 초인 만들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아리안(독일) 민족이 가장 우수한 민족임을 자랑하고 싶어서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여 어떻게 해서든 독일이 1등 하도록 독려하였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뮐러는 예수가 유대인이 아니라 아리아인이라고 주장하였다. 히틀러는 니체가 주장한 권력에의 의지와 초인 사상에 매료되었다. 그도 니체처럼 약함과 결함을 경멸하였다. 니체의 세계에는 고통이나 약함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물론 히틀러는 니체의 사상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재해석하여 잔혹한 살인을 저질렀다. 나치의 잔혹한 만행 덕분에 우생학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인식하여 그 연구가 잠시 주춤하였지만, 세월이 흐르자 과학계는 여전히 새로운 우생학 프로그램(인간 게놈프로젝트)을 개발하고 있다. 꼭 우생학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많은 사람은 등수매기기를 일삼고, 일등한 사람, 성공한 사람만 높이 떠받들며 모든 사람을 초인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2. 권력에 저항한 본 회퍼
나치가 잔혹한 만행을 저지를 때 대다수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다. 초인의 길, 강자의 길, 권력에의 의지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그러나 몇몇 깨어있는 저항자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한 명이 디트리히 본회퍼(Bonhoeffer, Dietrich, 1906~1945)다. 그는 성경을 통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니체는 약함을 경멸하였지만, 바울은 약함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의 이런 말들은 본회퍼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요, 노예들의 종교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집트에서 노예 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여 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너희가 전에 이집트의 노예였던 것을 잊지 마라.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된 자들을 돌보라."
본회퍼는 십자가에 고통받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본회퍼에게 십자가를 지는 길은 타인을 위한 희생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독교는 약자들, 낮은 자들,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걸어갔던 길이고, 그의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는 말한다. “교회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다." “제자들이 그들의 십자가를 질 때 발견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시다."
오늘날 기독교는 본회퍼의 말대로 십자가를 짐으로써 잃어버린 예수를 다시 찾고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5. 레비나스와 본회퍼
4. 니체, 히틀러, 본회퍼
2. 맹자와 본회퍼의 고민
1. 다윗과 본회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