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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19. 2015

레비나스와 본회퍼

서양 철학의 주류는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였다. 그것은 극히 자기중심적 사고 방식이다. 서양 철학은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하였다. 그의 생각은 '나'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스피노자는 이런 자기 중심적 사고를 ‘존재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DNA가 그러하듯이 온갖 수단을 다해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죽음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려고 애를 쓸 뿐이다. 니체는 그걸 '권력에의 의지'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아무런 윤리가 없다. 이곳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내 주변에 나와 똑같이 생존 본능으로 몸부림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도 그들의 유전적 본능을 따라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한다. 자연스럽게 나와 타자 사이에는 갈등이 생긴다. 남을 밟지 않고서는 내가 설 수 없는 살벌한 세상은 전쟁터와 같다.


리투아니아에서 출생한 유대철학자 레비나스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족 모두를 잃었다. 누구보다도 원수인 독일을 증오할만한 그였지만, 그는 놀랄만한 철학을 펼친다. 레비나스는 히틀러와 독일 나치즘이 저지른 만행은 곧 타인을 제거하고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생존경향의 확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살인은 타인을 단지 소유, 지배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전쟁은 나와 너의 생존경쟁이 빚어내는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는 칼과 창으로 싸우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보다 더 잔인한 싸움이 총성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싸움을 멈출 방법은 없을까? 누구보다도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는 레비나스는 고민한다. 토마스 홉스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계약을 맺으므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레비나스는 홉스가 제안한 방법도 물론 평화의 한 방법이긴 하지만, 거기엔 이성적 계산만 있지 윤리는 없다고 비판하였다. 계산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언제든 다시 피 터지는 싸움이 전개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레비나스는 여기서 나의 통제 밖에 있는 '타인의 얼굴’을 이야기한다. 사실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하는 온라인에서는 온갖 독설을 퍼붓지만, 정작 얼굴을 마주하면 말 한마디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굴을 마주할 때 두 사람의 인격이 만난다. 레비나스는 그저 두 사람이 평범하게 만나는 것에 대하여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탈무드 전통에서 철학적 영감을 얻어내는 레비나스는 다른 사람을 품어 안는 책임의 윤리를 이야기한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로 나아가듯이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잘못까지도 포용하는 윤리다.


타인이 나를 부를 때 나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그의 부름에 수용하여 그를 품어 안든지, 아니면 거부하고 다시 자기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든지 하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부름을 거부하고, 타인에 대한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 곧 죄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치의 학살로 가족 모두를 잃은 레비나스의 윤리철학은 엄청난 울림이 있다.


히틀러에 저항운동을 하다 순교한 본회퍼 목사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교회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다. 만약 우리가 교회로 시작했다면, 뒤로 물러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하고, 타인을 위한 사랑의 삶, 즉 타인을 위해 희생까지도 베풀 수 있는 삶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회퍼에게 이것은 이론이자 실천이었다.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 스티븐 니콜스 지음 / 김광남 옮김 / 아바서원 / 69쪽)

참고도서

타인의 얼굴 레비나스의 철학 / 강영안 지음 / 문학과 지성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 스티븐 니콜스 지음 / 김광남 옮김 / 아바서원


본회퍼의 또 다른 이야기들

7.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6. 두려움 앞에서 떠는 본회퍼

5. 레비나스와 본회퍼

4. 니체, 히틀러, 본회퍼

3. 온 몸으로 히틀러에 저항한 본회퍼

2. 맹자와 본회퍼의 고민

1. 다윗과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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