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산 공동묘지에서
유대인들은 모든 주검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주검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레11:8)
이스라엘은 아열대 기후로 한여름에는 40도를 오르내리기에 시체가 빨리 부패한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그 어떤 사체도 만지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신약성경에 보면 회칠한 무덤이란 말이 나온다.
당시 무덤은 석회를 이용하여 하얗게 칠했는데, 그곳이 무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혹여라도 무덤을 만지거나 밟아서 부정하게 되지 않도록 하려는 뜻이었다.
반면에 성경에 회칠하지 않은 무덤도 나오는데 이는 관리하지 않은 무덤이다.
만일 누가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 부정한 사람이 된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 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눅11:44)
가난한 사람들은 평토장을 하였지만 좀 부유한 사람들은 동굴 무덤을 이용하였다.
이스라엘의 산악지대는 거의 다 석회암(Limestone), 백악질(Chalk), 사암(Sandstone)으로 되어 비가 오면 지하로 스며든다.
스며든 물은 석회를 녹이면서 여기저기 크고 작은 굴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런 굴을 이용하거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도 있다.
동굴 무덤 안에 들어가면 회랑이 있고, 죽은 사람의 몸을 돌 선반 위나 혹은 돌벽을 더 깎아서 넣기도 하였다.
관을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예수님의 경우처럼 세마포로 잘 써서 선반 위에 두는 예도 있다.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 1907~1978)는 무덤을 맷돌처럼 생긴 커다란 돌판으로 막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무덤 입구 바닥에 둥근 호를 파서 돌이 잘 굴러가 입구를 막을 수 있도록 하였다.
무덤을 막은 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돌을 관통하는 밧줄을 장정들이 잡아당기고 밑에 쐐기를 박아 구르지 못하게 하였다.
다시 닫을 때는 쐐기만 빼면 자연스럽게 문이 닫혀진다.
인봉을 하였다는 것은 끈이 있는 곳에 진흙을 이겨 막은 것을 뜻한다.
진흙은 종종 다양한 목적을 가진 도장의 인주 역할을 하였다.
욥기에 보면 진흙에 인친다는 말이 나온다.
"땅이 변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이 되었고”(욥기38:14)
무덤을 돌로 막아 두는 것 역시 부정한 무덤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감람산 꼭대기에 있는 선지자의 무덤을 들어가 보았다.
스가랴, 말라기, 학개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예수님 당시의 무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몇 안 되는 무덤이다.
안은 깜깜하여서 촛불을 켜고 들어가야 하는데 계단을 타고 땅밑으로 조금 내려가면 현관이 나오고, 좀더 들어가면 좌우 벽에 시신을 넣을 굴을 파 놓았다.
습기 차고 어두컴컴한 곳은 미로처럼 길이 나 있어 조금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정신이상자들은 동굴 무덤 속에 거하기도 했다. (막5:2-3, 눅8:27)
때때로 도망자들이 무덤 속에 숨어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무덤에 접근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윗도 주로 동굴 속에 숨었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박해를 피해 동굴 속에 자주 숨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이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사로잡혔을 때 제자들은 대제사장 가이사의 집 바로 아래 힌놈의 골짜기에 있는 무덤 동굴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학자마다 예수님 무덤의 위치에 관한 학설이 다르다.
유대인들은 무덤을 부정하게 여겨 반드시 성 밖에 두었다.
골고다는 헤롯 아그립바가 성을 확장하면서 성 밖이 아니라 성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헤롯이 이두메인이긴 하지만 유대의 문화와 전통을 따르고 있었기에 무덤을 정화하는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
성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덤을 파괴하고 흙을 메우고 깨끗하게 해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하드리아누스 황제(Hadrianus, AD76~138)는 기독교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 장소를 완벽하게 파괴하고 그 위에 비너스 신전을 세웠다.
따라서 지금 성묘교회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예루살렘은 바위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에 어디라도 조금만 파면 바위가 나오는 지형인데 그것을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루살렘 주위에 수많은 무덤이 있다.
예수님의 무덤처럼 근거 없는 무덤들이 있는데 그중에 다윗의 무덤과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
다윗의 무덤은 예루살렘을 방문한 랍비 벤야민이 1158년에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다윗이 죽은 지 2000년이 지나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유대교는 그곳을 성역화하여 보존하고 있다.
마리아의 무덤은 AD 5세기경에 비잔틴 교회가 조성하였고 534년 그곳에 마리아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614년 페르시아가 쳐들어와 파괴하였고, 1090년 하킴 왕이 다시 한 번 파괴한 것을 12세기 십자군들이 교회를 지어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재 감람산은 유대인들이 공동묘지로 사용하고 있다.
감람산이 묘지로 주목받는 이유는 황금 문 때문이다.
황금 문은 종려 주일에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들어갈 때 사용했던 문이다.
이 문에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전설이 있다.
하나는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예수님이 다시 그 문으로 나타나면 그들의 제국이 멸망한다는 전설 때문에 이 문을 막아버렸다.
현재의 황금문은 성문이라기보다 마치 성벽에 새겨진 무늬처럼 보인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로마 황제 티투스가 성전을 불사를 때 셰키나(shekhina)가 이 문을 통해 세상을 벗어났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에 사는 신앙심 깊은 유대인들은 심판의 날이 되면 이 문을 통해 셰키나가 성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날이 되면 착한 사람들 곧 유대인들은 남쪽 문(자비의 문)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요, 악한 사람들 곧 이방사람들은 북쪽 문(후회의 문)을 통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유대인들은 죽어서라도 시신을 예루살렘에 보내는 관습이 생겼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셰키나)가 오면 황금 문이 열릴 것이고, 죽은 자들은 일어나 메시아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황금 문을 막은 이슬람이나 셰키나의 영광이 다시 그 문을 통해 들어오기를 소망하는 유대인이나 조금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란 땅 자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간에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8)
보이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기독교인의 마땅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