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남쪽의 이집트 문명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통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형은 매우 험하여 평탄한 길을 내기가 매우 어렵다.
걸어서 간다면 얼마든지 통과해 갈 수 있지만, 전차나 마차를 이용하여 갈 수는 없다.
그런데 남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므깃도가 있는 이스라엘 평야를 통과하는 길이다.
므깃도는 북쪽의 시리아 지방과 남쪽의 이집트를 연결해주는 통로에 있다.
사실 므깃도는 높이가 50m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평야 지대에 있기에 전략상 매우 중요하다.
북쪽에 있던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의 나라가 이집트를 치러 갈 때나, 남쪽의 이집트가 북쪽을 공격할 때 이스르엘 평야에 있는 므깃도는 언제나 전쟁터가 되었다.
그러므로 므깃도는 옛날부터 전쟁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최초의 전쟁 기록은 BC 1468년경 이집트의 왕 투트모스 3세가 가나안 부족을 몰아내고 므깃도를 점령하였다는 기록이다. (Tell el-Amarna 문서)
성경에서도 므깃도 전투는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므깃도에서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하였고, 사사 드보라와 군대장관 바락이 가나안의 시스라를 물리친 곳이 므깃도다.
다윗이 므깃도를 점령하였고 솔로몬이 므깃도를 요새화하였다.
솔로몬은 므깃도에 500필의 말을 사육하며 왕실의 마병을 육성하였는데 1960년 이스라엘의 야딘(Yigael Yadin) 교수가 그것을 발굴하였다.
그 후 오므리 왕조 시대에 아합이 므깃도를 재건하였다.
므깃도에서 아까운 죽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요시아 왕의 전사다.
요시아는 다윗 이후 가장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을 추진한 왕이다.
그는 종교적인 열정뿐 아니라 민족주의적인 열정에도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 다윗의 영토를 회복하려고 애를 썼다.
분열된 다윗 왕국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야심 속에 아시리아로부터 사마리아를 되찾는 데 성공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지도력은 많은 유대인에게 공감을 얻었다.
요시아는 진정한 다윗의 후계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가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다윗 왕국을 회복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시리아가 약해지는 것은 그 뒤에 바빌론이라는 새로운 강대국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는데 요시아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빌론과 손을 잡고 아시리아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요시아에게 있어서 최고의 관심은 바빌론이 아니라 아시리아였다.
사실 바빌론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는지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아시리아와 손을 잡고 바빌론을 견제하였을 터인데 그는 세계정세를 읽어내지 못하였다.
기원전 609년 바빌론이 아시리아의 잔여세력을 공격하고 있을 때, 이집트가 아시리아를 돕기 위하여 대군을 보냈다.
이집트와 아시리아는 오랜 원수지간이지만, 새로 등장한 바빌론이 얼마나 강대한지 알았던 이집트는 기꺼이 어제의 적인 아시리아를 돕기 위하여 원군을 보냈다.
이러한 이집트의 대군을 막아보려고 나선 것이 바로 요시아 왕이다.
그는 아시리아만 무너뜨리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엄청난 전쟁터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결국, 므깃도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였고 요시아마저 목숨을 잃었다.
이후 남 유다는 급속도로 쇠퇴하고 결국 신흥 강국 바빌론에게 처참히 멸망당하였다.
요시아 왕은 신앙적으로는 뛰어났지만, 아쉽게도 세계정세를 읽어내는 데는 부족하였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도 좋아야 하지만, 세상을 보는 바른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다.
강대한 바빌론이 세계를 제패한 이후 므깃도는 전략적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폐허가 되었다.
그러한 므깃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요한계시록 16:16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 때문이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16:16)
아마겟돈은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인데 실제로는 ‘할 므깃도’이며 번역하면 ‘므깃도 산’이란 뜻이다.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 아마겟돈은 사실 전쟁터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인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에 의하여 잘못 부각되었다.
종말론자들은 3차 세계대전이 아마겟돈에서 실제로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이 영화제작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여러 편의 영화가 아마겟돈이란 타이틀을 걸고 제작되었다.
그런데 실제 므깃도에 가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은 영국을 뺀 전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므깃도가 있는 이스르엘 평야는 얼마나 크고 넓을까?
이스라엘 전 국토는 우리나라 경상도 땅만 하다.
그중에 이스르엘 평원이 넓어 봤자 얼마나 넓겠는가?
그곳에서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전 세계 군대가 모인다면, 그 군인들을 일렬로 세워놓아도 땅이 좁아서 다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아마겟돈은 그동안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므깃도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쟁으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도 요한이 그 상징성을 빌려 쓴 것뿐이다.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글들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엉뚱한 종말론을 강조하는 무리가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1997년 이장림 일파의 종말론인 세대주의 종말론이 가면만 바꿔쓰고 다시 나타나는데 이러한 헛된 종말론에 현혹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우리는 아쉽게도 시간 관계상 므깃도 주차장까지만 갔다가 사진 한 장 못 찍고 돌아서야 했다. ㅠㅠ
다음번에는 므깃도에 꼭 올라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