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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pr 20. 2016

무릎 꿇으시렵니까?

압살롬의 반역(삼하15장)

다윗과 압살롬이 화해의 키스를 나눈 지 또 4년이 지났다.(삼하15:7)

둘 사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듯하다. 

성경은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그 후 둘이 서로 만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압살롬은 드디어 아버지를 배신하고 반역의 칼을 뽑아 들었다. 

만일 그가 다윗 왕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면, 반역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1) 


사실 큰 형 암논과의 갈등도 다윗의 후계 문제로 불거진 일이었다. 

암논은 장자의 명분을, 압살롬은 백성들의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삼하14:25)

두 형제의 갈등은 마침내 암논을 살해하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아버지와의 갈등은 끝날줄 몰랐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과 화해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도 왕의 후계자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윗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더욱이 만나주지도 않고 4년을 또 허송했다. 


역사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지만, 다윗이 탕자를 용서하고 받아준 아버지처럼 그렇게 압살롬을 용서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유진 피터슨은 다윗이 그동안 저지른 여러 가지 범죄 중 가장 큰 죄가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고 품어주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았건만, 압살롬에게 사랑 베풀기를 거절하였던 것은 완고함의 극치였다. 

4년 동안 수많은 날이 지나갔지만, 다윗은 갈수록 마음 문을 열지 않았다. 

아들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만나기도 싫어한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마음에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하나님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2)


압살롬은 아버지에게서 단 한 가닥의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역을 꿈꾸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세웠다. (삼하15:1) 

이것은 명백한 반역의 징조다. 

나중에 압살롬의 이복동생 아도니야도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였다. 

왕자가 개인 무사를 이 정도로 거느리는 것은 왕의 후계자로 내정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압살롬은 백성의 마음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는 애로사항이 있어 예루살렘을 찾는 백성을 만나서 자기가 처리해주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마땅히 다윗 왕이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가로채어 자신이 처리함으로 민심을 훔쳐갔다. 

사실 다윗 성은 매우 작은 성이다. 

현재 예루살렘 성의 1/10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이 그 작은 성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를 리가 없다. 

그가 손을 써서 압살롬의 하는 짓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꼴 보기 싫은 아들이라 오히려 모른척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반역은 점점 무르익어갔다. 


마침내 압살롬은 자신이 전에 서원한 대로 헤브론에 가서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였다. 

다윗은 미운 아들의 요청에 두 말도 않고 승락하였다. 

“평안히 가라."

서로 얼굴 보지 말고 살자는 뜻이 담긴 듯하다. 

그러나 헤브론이 어떤 곳인가? 

헤브론은 아브라함 때부터 여호와를 섬기던 유서 깊은 곳이요, 다윗이 왕으로 추대를 받은 곳이요, 압살롬의 고향이기도 하다. (삼하3:2-3)

압살롬이 반역을 저지르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헤브론이다. 

그가 반역의 나팔을 불었을 때 이스라엘의 인심이 압살롬에게 다 돌아갔다. (삼하15:13) 

더욱이 다윗의 참모 중 가장 지혜로운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섰다는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압살롬의 반역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이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헤브론에서 왕이 된 다윗은 헤브론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천도한 것 때문에 헤브론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라고 A.A. 앤더슨은 추측하고 있다. 3) 

노년의 다윗이 실정을 거듭하자 북쪽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일부가 반역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반역의 보고가 잇따라 올라오자 다윗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피난 길에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유대광야다. 

유대광야는 다윗이 어릴 적 양을 치면서 하나님을 만난 곳이고,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보호 하심을 경험한 곳이다. 

그가 지금까지 압살롬에 대한 미움때문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지 않았는데, 이제 고난이 다가오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찾고자 하였다. 

다윗은 늘 위기 속에서 강하여지고, 고난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곤 하였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그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피난을 떠났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의 부하들이 빨리 피신하라고 재촉하지만, 다윗은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만날 사람을 다 만나고, 지시할 것을 다 지시하고, 비교적 여유있게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간다. 

얼마든지 압살롬을 대항해서 저항할 수도 있었지만, 다윗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심정을 보인다. 


잇대가 600명의 군사와 함께 다윗을 찾아왔을 때도 다윗은 굳이 거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삼하15:20)

제사장 아비아달과 사독이 레위사람들을 동원하여 법궤를 메고 왔을 때도 그는 법궤를 예루살렘 성전에 도로 가져다 놓도록 하였다. (삼하15:25)

법궤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표시로, 조선 시대로 표현하자면 옥쇄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궤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자신이 법궤로 나아갈 수 있지만, 법궤가 자신에게 오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4) 

그의 오랜 친구 후새가 왔을 때도 다윗은 그의 연로함을 염려하며 오히려 예루살렘 성에서 맡겨진 일을 감당하라고 사양하였다.(삼하15:32-37)

그가 그렇게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으로 올라갈 때 백성들은 눈물로 다윗의 뒤를 따랐다. 

그는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급하게 정신없이 도망친 것이 아니라, 이런 처지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유대광야로 나간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편안할 때 나타나지 않고 고난의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나이 많다고, 혹은 가정일에 얽매여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감정적 반응을 보이며 국정을 소홀히 했던 다윗이 위기를 맞이하자 그는 본능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다. 

결과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좋든지 나쁘든지 무조건 따르겠다는 심정으로 길을 떠났다. 

다윗이 위대하다는 것은 그가 실수가 없고 완벽해서가 아니라 정말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되면, 그는 하나님 앞에 기꺼이 무릎 꿇는다는 점이다. 

나도 다윗처럼 무릎 꿇어야 할 때 무릎 꿇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주(註)

1) 사무엘하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이태훈, 두란노, 284쪽

2) 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유진 피터슨, IVP, 228쪽

3) WBC 주석 사무엘하, A.A. 앤더슨, 솔로몬, 333쪽

4) 엑스포지멘타리 사무엘하, 송병현, 국제제자훈련원, 242쪽


이야기로 풀어쓰는 사무엘하 

1. 사무엘하 14장 - 용서는 구원의 도덕이다. 

2. 사무엘하 13장 - 강간범 암논을 처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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