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만난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학교 친구들, 동네 친구들, 사회 친구들 등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 좋은 사람도 있지만,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만남이 행복일 수도 있지만, 때로 불행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복 중의 복이다.
그런데 좋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어떤 회사는 사람을 뽑을 때 관상을 보고 뽑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얼굴을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아니면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성형으로 얼굴을 뜯어고치고 있으니 이 또한 좋은 방법은 아닌듯하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가면을 몇 개씩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욕망이나 정치색, 성적 취향,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등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며 살아간다.
포식자의 눈을 피하려고 자신의 피부색을 재빨리 바꾸는 동물들이 있다.
보호색이라고도 하고 은폐색이라고도 한다.
먹고 먹히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사람들도 어느새 카멜레온처럼 은폐색을 가지고 있다.
대학 다닐 때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여름 방학 기간 함께 농촌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일주일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모른다.
아마 내 일생 그때처럼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착했던 때는 별로 없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 여자가 나의 실체를 잘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에게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 목표가 있으면, 자신을 위장하고 은폐하는 기술을 발휘한다.
열심히 충성하고, 성실하게 봉사하고, 진심으로 섬기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일 수도 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형제 사랑’이란 설교에서 참으로 거듭난 성도는 형제(거듭난 성도)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본다.
그들은 모두 한 영광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와 만나 대화하길 좋아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면서 함께 영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공감하며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힘을 모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교회는 단순히 사회적 교제를 나누는 장소가 아니다.
교회 교인으로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다가 아니다.
교회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깊은 영적인 교제가 있어야 한다.
생명은 항상 서로 끌리게 되어 있다.
말 한마디 해보면 이 사람이 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영적인 시각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별하는 눈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내 눈을 열어 주소서.”(시1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