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위한 마음 준비 3
아침에 열고 나간 문을 저녁에 다시 닫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상의 기적은 별로 없습니다. (류호준)
경남 사천에 ‘281 시험비행대대’가 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을 하는 조종사들이 있다. 새로 제작한 비행기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시험 비행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행기의 기계적 결함을 찾아내기 위하여 비행은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간다. 때로 엔진의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공중에서 엔진을 껐다가 다시 켜는 시험도 한다. 테스트 파일럿(시험비행조종사)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이런 위험한 비행을 한다.
항공기 발전은 테스트 파일럿들이 생명을 바쳐 시험 비행을 하였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특히 1950년대는 일주일에 한 명씩 테스트 파일럿이 비행 중 목숨을 잃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비행기의 안전을 위해서 그들은 모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시험비행대대인 281부대의 김철한 소령은 친한 친구 조종사의 죽음을 목격한 후 늘 자신의 비행이 마지막일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꼭 가족과 통화를 한다. 혹시 자신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아쉽지 않기 위하여서다. 그는 비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아내와 딸이 기다려주고 있음에 감사한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상이 주는 소중함과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돈, 결혼, 건강, 합격, 취직, 자기 집을 사는 것,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 친구와 수다 떨기 등 우리를 기분 좋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분명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는 행복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연구에 의하면 3개월 이상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는 없다고 한다.
2014년 12월 미국 사이언스지에 ‘하루의 재구성’이란 논문을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가 발표하였다. 미국의 1,000명 여성을 대상으로 매일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심리적 상태를 조사하였다. 그들은 매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을 나열하고 그것에 심리적 점수를 매겼다. 친한 사람과 만나기, 사교활동, 휴식 등은 긍정적 점수를 받았지만, 직장 생활이나 아이 돌보기 같은 일은 부정적 점수를 받았다. 여성들은 가장 피곤한 느낌을 주는 사람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꼽았고, 두 번째로 피곤한 사람으로 자녀를 꼽았다. 가장 사랑해야 하고, 또 가장 행복을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피곤하고 귀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매일 만나고 대화해야 할 사람들을 귀찮게 여기면서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은 앞서 언급한 행복의 조건들이나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저 힘들고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 행복이 올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지금 일상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도 절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행복의 조건을 갖추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의 유통기한은 3개월이면 끝이다. 그다음에는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 기다리고 있다. 주어지는 일상에서 사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영원히 행복을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한 때 나는 이 말씀은 불가능한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것은 기뻐할 일에 기뻐하고, 감사할 일에 감사하라는 말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훈련을 쌓으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자신의 행복을 챙기는 데 너무 소흘했다. 감사와 행복보다는 불행과 불평거리만 생각했다. 행복은 먼 미래에 있는 줄 알고 허리띠 졸라매고 참으면 언젠가 올줄 생각하였다. 그런데 일상이 바로 행복이다.
시편 기자는 일상에서 누리는 행복을 감사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8)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던 자리에서 구원받았음을 깨달은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다. 며칠 전에 내가 아는 한 분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내 주위에도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노년의 시기를 보내는 사람은 언제 떠나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노년의 감사는 저녁에 누워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행복임을 아는 것이다. 인생의 지혜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깨닫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