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Dec 04. 2016

이빨 빠진 예수님

필리핀은 석회질 토양이어서 정수한 물을 사 먹어야 한다. 가난하기에 정수된 물을 사 먹지 못한 사람은 치아가 좋지 못하다. 20대에도 틀니를 한 사람을 적잖이 볼 수 있다. 구강 위생은 문명인에게 미덕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직도 꿈같은 일이다. 이번 주간 중국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어린 신학생들의 치아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예수님 당시 위생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이를 닦느냐고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모두 큰 소리로 이를 닦는다고 하였지만, 물이 안 좋은지 혹은 영양 상태가 안 좋은지, 이가 변색되거나 빠진 모습이 보였다. 


예수님 당시 공중위생 상태는 어떠했을까? 고대 도시에 상, 하수도는 어떠했으며, 쓰레기 문제는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화장실은 어떠했을까? 이는 닦았을까? 

1884년 미 해군 군의관인 조지 우드(George W. Woods)는 조선을 방문하고 당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중요 통행료를 제외한 (서울의 거리는) 대부분 진흙투성이다. 거칠게 포장된 길을 지나가려고 애쓰는 보행자들, 짐을 실은 동물들과 일꾼들, 소나무 잡목을 실은 황소들로 거리는 혼잡하고 불결하며 좁고 더럽다. 거리 양쪽에 있는 시궁창에는 온갖 액체 폐기물이 버려지고, 이 시궁창의 폐기물들은 수로를 따라 결국에는 강에 도달한다. 뚜껑도 없이 열려 있는 하수구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위가 상한다. 아마 뜨거운 여름철에는 병균의 온상지임이 틀림없다.” 

길거리 옆으로 좁은 도랑이 있는데 끈적끈적한 진녹색 시궁창 물이 흐르다 쓰레기 때문에 막히곤 하였다. 우물은 오수로 오염되어 있고 옆에서는 여인들이 더러운 옷을 몽둥이로 두들겨 세탁하였다. 그 옆에는 음식 찌꺼기들이 버려져 썩어가고 있었다. 악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불과 130년 전 사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130년 전 조선과 비교하여 고대 로마는 어떠했을까?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이란 책을 쓴 제롬 카르코피노(Jerome Carcopino)는 로마 거리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다른 가난한 악마들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먼 길을 걸어 오물 구덩이로 가는 수고를 덜려고 고층에서 요강을 길거리로 비우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길 가던 행인이 이 환영할 수 없는 선물세례를 맞게 되면 오물 범벅인 채로 때로는 상해까지 입은 채 쥬버날의 풍자시에 나오듯 미지의 공격자를 향해 악을 쓰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로마 거리는 진흙, 하수구 개천, 쓰레기, 오물더미가 쌓여 있었으며 때때로 사람의 사체까지 방치되었다. 사방이 벌레 천지였고 냄새는 코를 찔렀다. 당대 최고로 발달한 도시의 위생상태가 이 정도였으니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나을 것은 없었겠다. 


고대 다윗성을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재래식 화장실 두 개를 발견했다. ‘아히엘의 집’ 작은 방에서 발견하였는데 석회로 칠한 구덩이 위에 구멍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대변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소변을 위한 것이었다. 일반인 집에는 화장실 같은 시설이 없었으나 상류층 집 안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화석화된 인간의 배설물을 채취 분석한 결과 그 당시 사람의 질병, 음식물, 그리고 영양 상태를 알아낼 수 있었다. 성경 시대 위생 시설의 질은 매우 낮았으며, 비위생적인 환경과 오염된 물이 합쳐져 기생충이 득실거렸다. 몸과 머리에는 이가 가득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흔한 병은 피부병과 눈을 멀게 하는 결막염이었다. 모두 공중위생과 관련된 병이다. 


구강위생은 어떠했을까?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로 고대에는 물 부족 문제뿐만 아니라 수질오염 문제가 심각하였다. 매일같이 이빨을 닦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고대 유대인의 치아가 가지런하고 보기 좋게 보존되었을 리 없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흔들리는 이를 뽑으려고 실로 내 이를 잘 묶은 후 갑자기 이마를 치거나, 혹은 문고리에 끈을 묶고 문을 확 열어젖히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시장 골목에 틀니를 만들어 파는 상인

조선 시대 치통으로 고생한 성종은 1480년 7월 8일 승정원에 전교를 내렸다. 

“내가 치통(齒痛)을 앓은 지 해가 넘었는데, 널리 의약(醫藥)을 시험하였으나 효력이 없다. 또 대왕대비께서 일찍이 식상증(食傷證)이 있었는데 지금 또 가슴앓이를 얻었으니, 관반(館伴)으로 하여금 사신에게 물으면 저들이 반드시 마음을 다하여 약을 구할 것이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땅한 진통제가 없었던 그때 23살 젊은 성종은 턱을 부여잡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의원들이 탕약을 올려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04년 데이비드 한(David E. Hahn)은 치과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그전까지 치과 치료를 위하여 서양 선교사들은 중국 상해나 동경으로 가야만 했다. 여행 경비에 치과 치료비까지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못한 선교사들은 광혜원에서 일하는 알렌을 찾아갔다. 그러나 치과 치료 경험이 없던 알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당한 핀셋으로 아픈 이를 단단히 잡고 뒤틀어 잡아당기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시도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 이를 부러뜨리기도 하였다. 환자는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그 모든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어떠했을까? 영화에 나오는 예수님은 막 샤워를 끝낸 듯한 모습에 깨끗한 옷을 입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실제 예수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빨 빠진 예수님을 상상하는 것은 불경한 일일까? 몸에서 냄새나는 예수님을 상상하는 것은 이단적일까?


중국 신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뜨거운 물로 매일 샤워를 하였는데 찬물만 나오는 신학교에서 나는 고양이 세수밖에 할 수 없었다. 찬물로 이를 닦고 면도를 하면서 문명인이 된다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였다. 딱 일주일 만에 나는 중국 사람이 다 되었다. 아침에 부스스한 체 일어나는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혼자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하였는데 넉넉지 못한 삶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이기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언제 목욕을 했는지 모를 학생들은 옴으로 몸을 긁적거리고 있었다. 며칠 만에 중국사람이 다 되었지만, 나는 옴이 무서워 학생들을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였다. 


그래도 성경을 공부하는 순수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정에 은혜를 받았다. 아직 완전한 종교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중국 땅에서 순교를 각오하겠다고 소리치는 학생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외모는 꼬질꼬질하였지만, 마음만큼은 너무나 깨끗하였다. 아침에 눈을 떠 온종일 성경을 공부하고, 저녁에는 자기들끼리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가슴이 뭉클하였다. 경찰의 감시를 피하려고 2년 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좁은 공간에 머물면서 성경을 공부하는 신학생들에게서 나는 중국의 미래를 보았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다. 공중위생도 아니고, 치아 건강도 아니고, 목욕도 아니다. 문제는 복음에 대한 열정, 뚜렷한 비전, 사명을 이루려는 결심,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문명화된 서울에서 교양있게 성경을 공부하는 우리는 중국에 가서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참고도서 

1.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 / 정성화, 로버트 네프 공저 / 푸른역사 / 2008년

2.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 류재화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3. 기독교의 발흥 / 로드니 스타크 지음 / 손현선 옮김 / 좋은 씨앗 / 2016년

4. 고대 이스라엘 문화 / 필립 J. 킹, 로렌스 E. 스태거 공저 / 임미영 옮김 / CLC / 2014년 

5. 성경과 편견 / 랜돌프 리처즈, 브랜든 오브라이언 공저 / 홍병룡 옮김 / 성서유니온 / 2016년 

6. 조선왕조실록

매거진의 이전글 사도들은 왜 바울에게 머리숙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