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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15. 2017

마음 나눔


19세기 말 조선은 양반 사회에서 조금씩 이탈하여갔다. 사대부 철학인 성리학은 쇠퇴하고 실용주의적인 사상이 주를 이루었다.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예술 작품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났다.


조선 말기 화단을 장악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였다. 사대부 집안으로서 문인 화단을 이끌어갔던 사람이다. 귀족 출신으로 자존심이 세고 남을 평가할 때 칭찬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오직 자기가 제일인 줄 생각하였다. 시, 서, 화에 능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룰만한 화가에 우봉 조희룡(又峯 趙熙龍, 1789~1866년)이 있다. 그는 원래 양반 집안이었지만, 집안이 쇠락하면서 중인 계급과 어울려 지냈다. 그가 어디서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글씨와 난 그림에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다. 비록 3살 차이지만 그는 기꺼이 김정희를 흠모하고 따랐다.


김정희는 중인계급의 화가들과도 교류하긴 하였지만, 평가는 박하였다. 조희룡의 난초 그림이 서법에 의한 문인화답지 않게 화법만을 중시한다고 비평하였다. 그러나 조희룡은 김정희가 잘 그리지 않았던 매화나 대나무 그림에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나갔다. 그의 백매화는 붓놀림이 경쾌하고 섬세하여서 꽃술 하나하나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그의 묵매화는 신사임당 이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평가받는다.

조희룡의 홍백매화도

어느 날 조희룡에게 누군가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祝壽)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림을 그리긴 해야겠는데 흥이 오르지 않았다. 공연히 먹을 갈아 붓을 끼적거리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붓과 종이만 있으면 저절로 글씨가 쓰이고 그림이 그려지는 줄 안다. 그러나 흥이 돋고 마음이 움직여야 붓끝이 살아 춤추며 삽시간에 그림을 완성하는 법이다. 몇 날 며칠을 끙끙대도 난초 하나 바위 하나 그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제도 할 수 없고 오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삼가 마음이 열리는 길한 날을 가려 선생의 축수(祝壽)를 위해 바칠까 합니다.

난초 하나 바위 하나가 별을 따기보다 어렵군요.

참담하게 애를 써보았지만 허망함을 느낍니다.

비록 그리지 않았으나 그린 것이나 진배없을 따름입니다.”1)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림도, 글도, 노래도, 춤도 어느 것도 작품이 되지 못한다. 자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모름지기 작품이라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만져야 한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담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날이 참 많다. 그렇게 지나고 나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점점이 박혀있는 행복의 순간들이 남아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 생각해보면, 그 행복의 순간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어주었거나, 진실한 마음을 받았을 때다.


작품은 마음이 움직일 때 나온다. 행복은 마음 나눔에서 나온다.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오늘 하루도 의미 없이 지나갈 뿐이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였는지 조금은 알 듯하다. 마음 없이 하루를 낭비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의 만남, 오늘의 시간이 후일 행복했었노라 고백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점찍게 되기를 소망한다.

“인생은 숨 쉰 햇수로 재는 게 아니라, 압도되고 매료된 순간들로 잰다.”


주(註)

1. 정민, 죽비소리, (서울, 마음산책, 200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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