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Mar 28. 2017

양아치의 규칙

중학교 다닐 때 불량한 학생들이 있었다. 일부러 교복 단추 몇 개 풀고, 모자는 삐뚜로 쓰고, 불량기 가득한 표정을 짓는 껄렁껄렁한 학생들이다. 한눈에 봐도 주먹깨나 쓸법한 친구들이었다. 가방에는 교과서 대신 자전거 체인이나 쌍절곤을 가지고 다녔다. 은근히 가방을 열어 보여주면서 자신이 불량배임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룰이 있었다. 양아치의 규칙이다. 최소한 자기 학교 학생이나 자기 반 학생은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반 학생이 다른 학교 학생에게 맞으면, 대신 나가 싸워주는 친구들이다. 그때 그들은 우리에게 영웅이었다. 

요즘 학교는 왕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찰관을 투입하고, 교사들이 정신 교육을 계속하여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문교부에서 상대평가를 도입한 이후 학교는 살벌해졌다. 이제 친구가 아니라 경쟁상대요, 밟고 일어서야 하는 대상이다. 친구를 위해 나설 일도 없고, 친구를 위해 희생할 일도 없다. 요즘 양아치들 사이에는 규칙이 없다. 그들은 다른 학교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학교 아이를 괴롭힌다. 자기 학급에 누가 제일 약한지, 못났는지를 잘 아는 그들은 왕따를 만들고 못살게 한다. 아주 질 낮은 불량배들이다. 


어느 시대나 약자는 있기 마련이다. 정신 지체아, 장애인,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 이방인 등이다. 문제는 사회의 리더들이 약자를 보호하느냐, 아니면 나서서 약자를 갈취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신명기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자세하고 길게 설명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며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설움 받던 노예였음을 기억하고,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이방인을 잘 보살펴주라고 요청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도들에게 약자를 보호하라고 간절히 호소한다. 


영국계 백인 소녀들을 가르치는 임무를 맡고 인도로 간 테레사 수녀는 16년 동안 교사 생활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교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1946년 다즐링으로 피정을 가던 중 기차 안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가만히 맡겨진 일에만 충성해도 존경받는 사람으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인도 콜카타 빈민가를 찾았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그때 인도는 처참하였다. 사회는 불안하였고 거리는 가난한 난민들로 넘쳐났다. 그녀는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을 보살펴 인간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미혼모와 고아를 돌보았고 나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도 세웠다. 그녀는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참된 리더는 언제나 약자 편에 서는 사람이다. 


불의와 불법이 횡횡할 때가 있다. 권세 있는 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 백성을 괴롭히고 갈취할 때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러했고, 소련의 스탈린이 그러했으며, 우간다 이디 아민이 그러했고, 캄보디아의 폴 포트가 그러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독재하는 나라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힘과 권세를 가진 자들이 자기 백성, 특별히 약자들을 괴롭혔다. 


1918년 소련에서 출생하여 육군 장교가 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성공을 꿈꾸었다. 1945년 포병장교였던 그는 별 생각 없이 친구에게 스탈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체포되어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비로소 부조리한 사회에 억압받는 약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약자 편에 서서 불의한 권세를 고발하기 시작하였다. 1962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하고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처음에 소련 당국은 그를 회유하고 포섭하려고 하였다. 자기들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편안한 삶과 권세를 줄 것이라고 하였다. 솔제니친은 훌륭한 작가로 대우받고 부자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불의한 권세 편에 서기보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약자 편에 서기로 하였다. 그는 결국 강제추방되었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약자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알아주건 말건 상관없이 그들은 영웅이다. 때로 존경받을 수도 있고, 때로 이름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과 헌신은 절대 헛되지 않는다. 에스더는 페르시아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바빌론에 의해 나라가 망한 뒤 이스라엘은 노예생활을 하였다. 설움 받고 멸시받는 노예의 삶은 비참하였다. 그들은 약자였다. 그때 악한 귀족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모든 유대인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들을 죽여버린다고 해서 누구 하나 그들 편에 서는 사람이 없었다. 에스더는 왕비이므로 하만의 계획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왕비로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고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앞장섰다. 


그리스도인은 죄 많은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영적인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멸망 길을 가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는 뜻도 있지만, 사회의 약자들을 품어 안고 그들 편에 서라는 뜻도 분명 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위대한 리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이웃의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살피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억울하게 피눈물 흘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 나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