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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Dec 25. 2016

사람이 변할까?

성탄절의 짧은 생각

사람이 변할까? 예수 믿으면 인생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고 교회에서 설교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설교를 여러 번 하였다. 그런데 정말 사람이 변할까?


1. 몸과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TV에 몸짱 아줌마가 나와서 운동 비결을 이야기할 때마다 난 크게 도전 받는다. 운동해야지. 큰딸은 전화할 때마다 "아빠 운동해?" 물어본다. 그때마다 난 "할 거야."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직 결심만 하지 운동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체중을 5kg만 줄여도 좋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젊었을 때는 일도 아닌 것이 요즘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끔 음식 조절도 하고, 계단도 오르내리며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는데 단 1kg도 줄어들지 않는다. 내 몸인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허탈감마저 든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의지력이 부족하다고 책망한다. 난 정말 책망을 들어도 싸다. 아무튼, 내 경우에는 몸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신년이 되면 자신의 못된 습관을 버리겠다고 결심한다. 벽에 금주 금연 멋지게 써 붙여 놓는다. 혹은 좋은 습관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해야지. 한 달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어야지. 가계부를 써야지. 일주일에 한 번은 아이들과 놀아주어야지. 그런데 평생 만들어 온 나의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 분명 나쁜 거 아는 데, 분명 내게 꼭 필요한 거 다 아는데, 한 해를 보낼 때마다 늘 후회와 탄식뿐이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뜻이고, 이루려고 했던 계획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말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나? 물어보면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2. 생각은 바꿀 수 있을까?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긴 쉽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생각, 낙천적인 생각, 적극적인 생각을 하면 삶이 바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그럴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취미와 싫어하는 취미,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왠지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하는 짓만 봐도 짜증 나는 사람, 보기만 해도 울화 돋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제부터 사랑해야지 결심하면, 정말 결심대로 될까? 마음은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5분도 못 가서 그 마음이 다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생각 바꾸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는 내 주위 사람의 반응과 마음을 살펴보았다. 문제는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고, 검찰이 범죄의 증거를 다 밝혀도 모두 거짓이라고 하면서 요지부동인 사람이 있다.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매일같이 카톡을 보낸다.

"촛불을 저주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 주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다."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종북 세력에 속아서 하는 짓이다."

어디서 퍼 온 글인지 모르지만, 말도 안 되는 비판의 글을 계속 보낸다. 나는 카톡 친구에서 삭제할 수도 없고 읽고 싶지 않은 문자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라지만, 이 정도로 세상 보는 눈이 없을까?


3. 인격과 성격은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성격이 괴팍한 사람 여럿을 알고 있다.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진실하게 드리고, 예배에 빠지는 법도 없다. 그런데 누구라도 한 번 성질을 건드리면,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주변을 초토화한다. 주위에서 상담이라도 받아보라고 권면을 한다. 본인도 상담받아야겠다고 한다. 그런데 상담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2~3년 꾸준히 정신분석 상담을 하여도 바뀔 수 있는 최대치가 5%라고 한다. 그나마 이런 변화도 사십 대 이후에는 힘들다고 한다.

사람의 현재 모습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결과다. 사람이 바뀌려면, 그가 보낸 세월만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한 번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한 번 뜨겁게 기도하였다고, 한 차례 부흥회 참여하여 큰 은혜를 받았다고 사람이 변할까?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면 사람이 변할까?


여기 예수 믿고 변화되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주님 말씀이면 무엇이든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진박인 골수 여당 사람에게 이제부터 야당을 지지하라고 명하면 순종할까? 골수로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이제부터 박근혜 씨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를 지지하라 하면 할 수 있을까? 목사로서 나는 솔직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설교자로서 나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설교해야 할까?


영국의 청교도 존 오웬은 그의 책 '영적 사고방식'에서 사람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의 정서가 광야의 관목같이 서 있습니다. 언제 좋아질지 알지 못하고, 매일 물을 주어도 언제 자라는지 알지 못하는 꽃나무 같습니다.” 존 오웬은 자신의 설교에 변하지 않는 교인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였다. 변화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실까? 예수님은 우리가 변화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변화 가능성 때문에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인 것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의 나쁜 습관, 잘못된 마음가짐, 정치적 성향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남들은 다 손가락질해도 주님은 언제나 내 편에 서 계신다.


가끔 부부동반 모임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모든 부부가 그러하겠지만, 자기 배우자가 다른 사람에게 멋진 모습으로 보이기를 소망한다. 집에서는 바보짓을 해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현명해지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안 샐리 없다. 꼴 보기 싫은 짓을 사람들 앞에서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참아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리를 찌른다거나, 말을 가로막고 정정할 때가 있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후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말싸움이 벌어진다.

"설령 내가 아무리 잘못하고 실수했어도, 당신만은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나?"

"나도 나의 잘못을 알고 있어. 굳이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지적해야 하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다 알지만, 그래도 나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품어주는 사람을 원한다. 정말 언제나 내 편 되어주고, 내가 잘못해서 똥고집 부려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나와 싸울 때는 언제나 무조건 져주고 그저 한없이 날 사랑해주는 사람은 어디 없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바로 진실한 사랑이 아닐까?


만일 그런 사람, 정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이 나의 편 되어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용납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 앞에서 무한정 땡깡 부리고 못된 짓만 계속할까? "당신이 날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니 난 당신 앞에서 멋대로 할거에요." 할까?


1960년대 국내 인기 남녀 보컬 그룹 '붕붕 사중창단이 부른 노래가 있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아무리 못생긴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키다리 뚱뚱보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주근깨 여드름 아가씨도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통속적인 가사임이 틀림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가르쳐준다. 진실한 사랑을 받으면 사람이 바뀐다. 아무리 못나고, 못된 사람이라도 나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사람, 무조건 내 편되어 주는 사람에게까지 못나고 못될 수는 없다. 그 진실한 사랑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사람도 아니다. 진실한 사랑을 받으면 외모도 바뀌고, 마음도 바뀌고, 성격도 바뀌고, 인생도 바뀐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간다.


그러면 과연 그런 사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넘어질 때 얼른 다가와 "어디 다친 데 없어?" 관심 가져 주고, 온몸에 더러운 것이 묻어도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나를 씻어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한없이 사랑하는 예수님을 나의 영원한 친구삼는 일이다. 나에게 날마다 변화하라고 잔소리하지 않고 그냥 친구처럼, 애인처럼 나를 품어주는 예수님을 친구 삼는 것이다. 언제나 나와 함께 동행하고 함께 하는 친구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성탄의 주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바리새인들처럼 우리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짐을 대신 져 주시려고 오신다. 그분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넘어지면 어떤가? 쓰러지면 어떤가?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주님 닮아가고 싶다. 주님과 함께 하다 보면 언젠가 주님 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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