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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Sep 05. 2017

메시지를 잃어버린 기독교

기독교의 공공성

서울대 교수 한 분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멘토링을 계획하였다.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자신의 취지를 밝히는 글을 올렸다.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다. 그런데 한 학생이 올린 댓글 때문에 상황은 바뀌었다. 학생이 올린 글은 대략 이러하다. “이분은 소망교회 장로인데 혹시 전도를 목적으로 멘토링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 이후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랭해졌고 지원자는 단 3명에 그쳤다. 청년 대학생들이 한국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한때 각 대학마다 수많은 선교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선교단체가 사라졌고, 그나마 있는 단체도 지원자가 없어서 고민이다. 한국 기독교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기독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 땅에는 소망이 없었다. 기존의 종교들은 권력자의 앞잡이가 되어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으며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은 외면하였다. 국권은 일본에 빼앗기고 압제와 착취로 백성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당시 기독교는 선교도 중요하였지만, 당장 이 백성의 아픔과 고난을 끌어 안아줄 필요가 있었다.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과 고아원을 세웠다.


선교사 사무엘 모펫과 그래햄 리는 평북 정주에 살면서 청일 전쟁 후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맥켄지 선교사는 한국인들과 같이 지내며 한국 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인으로 살아갔다. 그는 특별히 나환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동학혁명 당시에는 피투성이가 된 동학군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였다. 서서평 선교사는 32살 처녀의 몸으로 이 땅을 찾아와 일생 고아와 거지의 어머니로 살았다. 선교사들은 가난한 자, 여자, 상놈, 농민을 중심으로 선교 사역을 하면서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 고난받는 백성의 종교란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애굽의 노예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 이야기는 일제 압제하에 있던 백성에게 큰 소망이었다.


교회사학자 라토렛은 한국 교회 성장 요인으로 국가적인 운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식민지 백성에게 기독교는 희망이었고, 또 실제로 기독교 지도자들은 백성의 아픔에 동참하였다. 서양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한국인의 호감과 정서적 친화력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은 기독교가 어떤 자리에 섰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국 인구가 1,600만 정도였으며 기독교인은 20만 명으로 인구의 1.5% 정도였다. 그러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기독교 지도자는 16명이었고, 3.1운동을 점화한 48인 가운데는 24명이었다. 1.5%의 기독교가 독립운동에 25~50%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물론 기독교 지도자들의 민족 운동은 점점 퇴색하였지만, 일반 기독교인은 달랐다. 체포, 투옥된 9,458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2,087명으로 22%를 차지하였다.


처음 독립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은 신석구 목사는 교역자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할까, 천도교와 함께 독립운동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고민하였다. 그는 2월 27일 새벽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4천 년 전하여 내려오던 강토를 나의 대에 와서 잃어버린 것이 죄인데, 찾을 기회에 찾아보려고 힘쓰지 아니하면 더욱 죄가 아니냐!” 하는 음성을 듣고 결심하였다. 그는 옥고를 치르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고, 중병으로 석방된 후에도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강제 은퇴를 당하였다. 해방 후 북한 공산군에 의해 총살 당하였고, 국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기독교의 이런 모습은 많은 민족 지도자들을 기독교로 귀의하게 하였다. 백범 김구,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우사 김규식, 월남 이상재, 우당 이회영, 이준 열사 등. 고통받는 민족의 편에선 기독교는 큰 성장을 하였다. 을사보호조약이 있던 해 55.5% 성장을 보였으며, 6년 만인 1910년 한일 합방이 있던 때는 무려 79.9% 성장을 이루어 새신자만 141,897명에 이르렀다. 연평균 32% 성장이었다.


불행의 씨앗은 민족의 운명 속에 또 싹트고 있었다. 강력한 일본 제국 앞에 무릎 꿇는 기독교 지도자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약자의 편에 선 기독교가 아니라 권력자의 편에 서서 그것도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다. 신사 앞에 나아가 절하던 지도자들은 해방 후 제대로 회개하지 않았다. 신사참배를 가결했던 홍택기 목사는 해방 후 “옥중에서 고생한 사람이나,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고생한 사람이나, 그 고생은 마찬가지였고, 교회를 버리고 해외로 피난 생활을 했거나, 혹은 은퇴 생활을 한 사람의 수고보다는 교회를 등에 지고 일제의 강제에 할 수 없이 굴복한 사람의 수고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새롭게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이러한 교권주의자들을 감쌌고, 결국 기독교는 권력자들과 손을 잡았다. 당시 이승만과 부통령, 교육부 장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이제 기독교는 약자의 편에 선 종교가 아니었고, 고난을 함께하는 종교도 아니었다. 아이러니칼하게 권력과 손잡은 기독교는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대형 교회는 언제나 권력자들의 비호를 받았다. 지을 수 없는 땅에 교회와 기도원을 어마어마하게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권력의 힘이었다. 마치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권력자들의 지원을 받은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이다.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운동과 함께 외쳤던 구호 ‘잘살아 보세’는 백성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모두가 희생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때 기독교는 영혼과 육체가 다 잘된다는 번영 신학을 외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비판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풍요와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복 신앙 앞에 무릎 꿇기 시작하였다. 한국 교회는 열풍처럼 ‘축복 대성회’를 열었다. 교회는 물질주의, 성공제일주의, 기복신앙, 번영신학을 전하는 곳이 되었다. 교회마다 성공한 사람, 부자, 권세자들이 나와서 간증하였다. 자신은 신앙생활 잘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고, 성공하였고, 권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어리석은 백성은 자신도 잘살아 보려고 삶의 방향과 목적을 성공에 두었다.


마치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때는 약자의 하나님을 믿었는데, 자기들에게 땅이 주어지고 나라가 주어지니까 약자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윤리적 명령은 외면하고 너도나도 더 잘 살아보려고 바알 앞에 무릎 꿇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 이 땅에 일어났다. 풍요와 다산을 이야기하는 바알의 메시지나 교회의 메시지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성공한 사람, 부자, 권력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생각하여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들은 장로석, 권사석에 앉아 어른 행세를 하였다. 반면에 가난한 자, 약한 자, 병든 자는 신앙생활 잘못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교회 안에 돈이 쌓이고, 권력이 생기면서 부패와 타락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무당처럼 기복만 이야기하는 교회에 윤리는 사라졌고, 성경의 메시지도 사라졌다.


구약 선지자들이 망해가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피를 토하듯 외치던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대한민국 교회는 급속도로 고령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교회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교회 나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2015년 인구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인이 10년 전보다 123만 명 늘어나 967만 6천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통계청의 발표와 달리 현실은 정반대로 교인 이탈 현상이 뚜렷하다. 일부에서는 기독교인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500만에 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고 싶은 교회가 없다. 교회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듣기 싫다.' 가나안 성도는 누구인가? 교회를 나가지 않지만, 주님을 포기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진정한 교회, 바른 메시지를 증거하는 교회, 윤리적으로 바로 선 교회, 투명한 교회를 간절히 찾고 있다.


기독교가 다시 일어서려면 기독교가 어디에 서야 할 지를 정해야 한다. 구약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신명기 사상을 전하였다. 노예들의 하나님, 약자들의 하나님,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자들의 하나님을 선언하였던 신명기 사상이 선지자들의 메시지였다. 한국 교회 역시 신명기로 돌아가야 한다. 메시지를 바로 세우고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거룩함은 세상적 언어로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영적, 윤리적 방향성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기독교는 이스라엘이 망하듯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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