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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Nov 12. 2017

이런 정치가를 원한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서

1. 병자호란과 조선의 정치가들


영화 남한산성을 보았다. 명과 청이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힘없는 조선이 겪은 수모를 다룬 영화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으면서도 전쟁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 군사력, 무기, 전략, 군수품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이었다. 힘없는 나라가 취할 전략은 많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거나, 치욕스럽더라도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싸우자는 김상헌이나 굴복하여 삶을 도모하자는 최명길이나 둘 다 너무나 불쌍한 선비들이다. 그나마 두 사람이 확실한 명분을 가지고 싸우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은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안타까운 장면은 1637년 1월 1일, 명나라의 궁궐을 향하여 절을 올리는 망궐례(望闕禮)이다. 나라가 망해가는 순간에도 예의를 차리겠다고 임금과 모든 신하가 나와서 명나라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다. 민족 자존심은 찾을 수 없고 오직 사대 명분만 있다. 한번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으면 끝까지 따라야 한다는 조선 선비들의 주장은 어이가 없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 어떤 강대국도 약소국을 지켜주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싸울 뿐이지 약소국을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2.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정신


스위스 루체른에 ‘빈사의 사자상’이란 조각이 있다. 심장에 창이 꽂힌 체 죽은 사자는 스위스 용병을 상징한다. 그들은 프랑스 루이 16세를 지키던 용병을 뜻한다.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스위스 용병 760명은 왕을 지키다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한 군중이 밀려올 때 루이 16세는 용병들에게 도망가도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왜 그랬을까? 스위스는 한반도 1/5에 인구 800만의 작은 나라다. 국토의 4분의 3이 산과 호수로 이루어졌으며 산악에 개간한 농지로는 살기 힘든 나라다. 스위스는 용병을 수출하여 먹고 살았다. 그런데 용병이 돈만 받고 적이 무서워서 도망치면, 그들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루이 16세를 지키는 용병들은 자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장차 용병으로 나갈 후손을 생각하여 죽음을 선택하였다. ‘빈사의 사자상’은 그렇게 해서 스위스의 상징이 되었다. 나라와 후손을 생각하여 목숨을 바쳤던 용병들 덕분에 스위스 용병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 스위스가 살아남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스위스는 강대국에 기대지 않았다. 강대국은 결코 약소국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유럽을 집어삼킨 히틀러에게 스위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히틀러가 왜 스위스를 점령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스위스를 점령하여 얻는 유익보다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전 국민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라를 지키려고 하였다. 말만 한 것이 아니다. 정규군이 없는 스위스는 모든 남성이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는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48시간 이내에 50만 군대를 편성할 수 있다. 집마다 총기와 탄약을 보유하였으며 곳곳에 대피소가 있어 핵전쟁이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명분도 아니고, 강대국도 아니다.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이 된 것은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자주국방을 힘썼기 때문이다.


3. 약소국 이스라엘이 가야할 길


구약의 이스라엘도 약소국이었다. 남쪽에는 절대 강자 이집트가 있고, 북쪽에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 강대국이 자리하였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했을까? 하나님은 끊임없이 경고하셨다. 강대국(이집트)을 의지하지 마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온 나라였기에 언제나 친 이집트 정책을 사용하였다. 솔로몬은 이집트 공주를 부인으로 얻고서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바로 공주를 위하여 자신의 왕궁과 똑같은 궁을 지어주었다.(왕하7:8,12)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 나중에 이집트의 국운이 기울고 북쪽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도 사대 명분에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은 갈등하고 고민하다 결국은 망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끊임없이 큰 형님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강대국은 약소국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손 놓으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가난한 자와 약자를 돌보고, 공평무사하게 나라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한다면, 행복한 나라가 되고 강대국이 넘볼 수 없는 힘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주국방의 틀을 분명히 하고, 힘없는 백성을 돌볼 줄 아는 이상적인 국가가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약소국의 살길을 그렇게 제시하였다.


4. 이런 정치가를 원한다.


병자호란이 지난 지 380년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일본, 중국, 소련은 호시탐탐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려 한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을 형님으로 모시고 살아왔다. 새해만 되면 중국을 바라보며 절을 하고,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가 증명하듯이 중국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도와준다고 와서 오히려 우리를 괴롭히기만 하였다. 이제 대한민국은 미국을 큰형님으로 모시고 살아간다. 명에게 굴복했던 조선이 결국은 청에 또 굴복하였던 것처럼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꾸어 섬기고 있다. 해방 이후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사실 전략적 이용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지 정말 우리나라를 위한 것은 아니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약소국 대한민국이 살길은 어디에 있을까? 남한산성을 쓴 김훈 작가는 말한다.

“친미(親美)도 아니고, 반미(反美)도 아닌 탈미(脫美)여야 한다”

그 말은 친중(親中)도 아니고 반중(反中)도 아니고 탈중(脫中)이어야 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자주국방을 강화해서 영세 중립국이 된 스위스와 구약 이스라엘이 답을 제시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자기 살길이나 찾으며 말만 앞세우는 정치가들은 이제 이 나라에서 사라졌으면 한다. 사대 명분을 내세우며 나라의 운명을 강대국에 의지하려는 정치가들도 사라졌으면 한다.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치욕스럽게 굴종하자는 정치가들도 사라졌으면 한다. 힘없고 가난하고 설움 받는 백성이 없도록 나라를 잘 다스려 누구라도 이 나라를 사랑하고, 생명 바쳐 나라를 지킬 마음을 갖도록 할 정치가가 나왔으면 한다. 자주국방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져 그 어떤 강대국도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하는 정치가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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