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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Feb 05. 2019

길을 잃은 그대에게

초등학교 6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 때 서울로 전학을 왔다. 아버지는 큰아들을 서울에서 공부시켜야겠다고 작정하고 가족들보다 6개월 먼저 나를 서울로 보냈다. 마침 응암동에 고모가 사셨다. 나는 고모를 따라 서울의 응암초등학교에 처음 갔다.
“경락아!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야 한다."
“예. 고모, 걱정 마세요."  

시골에서만 살던 나는 서울의 복잡한 골목길들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6학년 교실에 들어섰는데 서울의 똘똘한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영락없는 시골 촌뜨기였다. 어리숙한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날 온종일 어찌 시간을 보내었는지 기억이 없다. 나에게 말을 걸어준 친구도 없었다. 가족도 없이 외딴 서울에 홀로 뚝 떨어져 있으니 그 처량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곧장 고모 집을 향하여 걸었다. 그런데 서울의 골목길들이 얼마나 복잡한지. 특별히 고모 집 근처는 바둑판 모양의 길에 고만고만한 집들뿐이었다. 이 집이 그 집 같고, 그 집이 저 집 같았다. 길을 잃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졌다. 시골길은 단순하여 어디든 한 번만 갔다 오면 찾아가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은 전혀 달랐다. 너무나 복잡하여 시골 촌뜨기인 나에게 미로와 같았다. 밤늦은 시간, 집을 찾았을 때에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하였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의 아픔이 어떠한지 그때 비로소 체험하였다.

아버지가 치매가 걸린 이후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때가 많았다. 가끔 교인들이 아버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면 아버지는 언제나 “나 좀 집으로 데려다줘요.” 부탁하였다. 아버지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리는 명찰에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서 목에 걸어주었다. 어떤 때는 경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때도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길을 헤매며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셨을까?


가끔 인생길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아무런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살고 있으니까 먹고, 먹으니까 또 하루를 살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은 길 위에 혼자 버려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이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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