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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r 03. 2019

긍휼의 마을, 가버나움


올해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상을 받은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Capernaum, 2018)’이 있다. 영화는 최초의 아랍 여성 감독 나딘 라바키(Nadine Labaki, 1974~)가 연출하고 출연하였다. 영화의 무대는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이다.

레바논은 성경에 나오는 두로와 시돈이 있는 나라다. 1926년 독립 전까지는 레바논 산맥과 바다 사이에 있는 시리아의 한 지방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아랍 기독교와 동맹을 맺고 이 지역의 산맥 이름을 따서 레바논이라 하였다. 1945년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결과 15만여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어 베이루트 주변에 난민촌이 형성되었다. 1958년 점차 증가하는 이슬람 세력과 레바논의 마론파 기독교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시아파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이슬람은 그 세력을 날이 갈수록 확장하고 있다. 현재는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들이 대거 유입하여 베이루트에 사는 사람 4명 중 1명은 난민이다. 그러나 1932년 실시한 인구 조사 말고는 여태껏 단 한 차례의 공식적인 인구 조사를 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다양한 아랍 종파 간의 갈등과 마론파 기독교와의 갈등,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 불법 체류자가 뒤엉켜 사는 베이루트는 한마디로 혼돈과 어둠으로 가득하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채가 많은 나라이며, 경제를 살리겠다고 대마초를 합법화하였다. 레바논에서는 부모가 승낙하면 9살부터 결혼할 수 있고, 승낙하지 않아도 14살이면 혼인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보면, 영화를 이해하기 훨씬 쉽다. 사실 출연진 대부분은 연기하는 감독 나딘 라바키 외에 모두 일반인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출연진의 연기력이 대단하여서 진짜 배우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12살 자인은 시리아 난민으로 온갖 궂은일을 다하다 감독의 눈에 띄어 캐스팅되었다. 출연진은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역할로 연기하였기에 진짜 연기자보다 훨씬 깊은 내면 연기를 한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신분증도 없고, 생년월일도 모르는 자인(Zein)은 12살로 추정된다. 그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가스배달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한 살 아래 여동생 사하라를 끔찍이 아끼는 자인은 닭 한 마리에 슈퍼 주인에게 딸을 팔아넘기는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고 가출한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자인은 우연히 불법체류 여성인 라힐과 그의 아들 요나스와 함께 살게 된다. 라힐은 에티오피아 출신 불법 체류자로서 미혼모이다. 라힐이 체포되자 어린 아기 요나스를 끝까지 보호하려고 하지만, 12살 소년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요나스를 좋은 곳에 입양해준다는 말에 속아서 아이를 넘겨주지만, 사실은 아동 매매하는 사람이었다.


집에 돌아온 자인은 시집간 여동생이 11살 나이에 임신중독으로 병원에 가지만 신분증이 없어서 치료도 못 받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인은 격분하여 슈퍼마켓 주인(매제)을 칼로 찔러 5년 형 징역을 받는다. 감옥에 있던 자인은 다시 부모를 고소하여 재판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아이를 낳았으면 최소한 돌봐주어야 하는데 방치하거나 앵벌이를 시키거나 닭 한 마리에 팔아넘기는 부모를 고소한 것이다.


영화는 감옥 안에서 처음으로 신분증을 만들며 사진을 찍는 자인의 미소로 끝난다. 여기서 영화 제목을 ‘가버나움’이라고 한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버나움과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유년시절부터 공생애를 시작할 때까지 살았던 동네다. 예수님의 제자 중 5명이 가버나움 출신이고, 예수님의 사역 중심 무대가 가버나움이었다.

가버나움에서 설교하셨고(막 1:21), 각종 환자를 고쳐주셨다.(마 8:16) 갈릴리 출신으로 자기 고향과 같은 가버나움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능력을 행하였다. 그만큼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동네이다. 그런 가버나움을 예수님은 저주하셨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3-24)


왜 사랑받고 은혜받던 가버나움이 저주를 받았을까? 그곳은 전통과 관습과 교리로 철저하게 무장한 바리새인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도 지기 힘든 짐을 가난하고 병들고 삶에 지쳐 허덕이는 백성에게 지웠다. 갈릴리의 풍요로움을 독식하던 부자들은 힘없고 연약한 백성을 외면하였다. 인간의 마땅한 도리를 가르쳐야 할 선생들도 백성을 못 본채 하였다. 


가버나움은 ‘긍휼의 마을”이란 뜻이다. 히브리어로 긍휼(나쿠훔)은 ‘여성의 태’와 같은 단어다. 어머니가 태아를 사랑하는 특별한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마치 태아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어머니의 긍휼과 같다. 그런데 교조적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거부하고 억압과 폭력과 착취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게 하였다. 가버나움은 그렇게 저주받은 도시가 되었다. 긍휼의 도시가 긍휼을 잃어버려 저주받았다.


베이루트 역시 긍휼을 잃어버린 도시다. 그곳은 정치가들의 야욕과 경제인들의 탐욕과 정파적이고 교조적인 종교인들의 싸움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 부모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때리고 착취하고 팔아넘긴다. 혼돈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그곳에 긍휼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지옥 같은 그곳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레바논 출신 여감독 나딘 라바키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를 통해서 비참하고 혼돈 속에 있는 베이루트에 희망을 전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가버나움 재단’을 만들어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하여 도움을 주고 있다. 자인을 연기한 알 라피아(Zain Al Rafeea)는 유엔 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2018년 8월 노르웨이에 정착하였고 생애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여동생 역할을 한 사하르(Hait Izzam)와 메이소운(Farah Hasno)은 유니세프의 특별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참고 도서

1. 팀 마샬, ‘지리의 힘’, 김미선 옮김, (사이 : 서울) 2016년

2. 이요엘, ‘고고학자들의 카리스마를 클릭하라’ (평단 : 서울)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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