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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May 28. 2019

롯의 아내

성경 속 여성 읽기

나는 롯의 아내입니다. 나는 이름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름이 있지만 한 번도 불린 적은 없습니다. 남편이 나의 이름을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심지어 나의 장례식도 치러주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그를 추모하는 꽃이라도 가져다 놓는 법이지만, 나의 죽음 앞에선 사람들의 욕만 무성합니다. 나의 죄가 그렇게 크고 중한가요? 억울한 마음에 나의 심정을 조금 털어놓습니다. 


처음 롯을 만나 결혼할 때만 해도 꿈이 있었습니다. 당시 롯은 제법 잘 나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집안도 꽤 넉넉했습니다. 그의 삼촌 아브람은 우르에서 우상 장사로 명성이 드높았습니다. 1) 전도유망한 청년 롯과 결혼은 행복을 예약한 듯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다짜고짜 고향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고향과 사업과 친척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남편은 대답하지 못 했습니다. 목적지도 없이 떠나겠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평소 여자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기에 더는 말릴 수 없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타향으로 가는 여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과 염소의 젖을 짜보았습니다. 매일같이 냄새나는 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때로 길에서 노숙할 때도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후, 많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처음 간 곳은 가나안이었는데 우르에 비하면 황무한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뭄으로, 우리는 이집트까지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거기서 숙모인 사라가 이집트 왕에게 사로잡히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린 모두 죽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난 한 번도 불평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은 욕심이 많아 이익이 된다고 하면,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혀 때로 삼촌의 목동과 싸웠습니다. 


결국 남편은 삼촌 아브라함과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가나안 땅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큰 도시가 있었으며, 비교적 발달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소돔과 고모라에 가면, 잘살게 될 거라고 장담하였습니다. 


소돔에서 삶은 과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록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거기서 두 딸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은연중에 남편은 나를 무시하였습니다. 남편의 외면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 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두 딸이었습니다. 어린 딸들이 광장에서 뛰어놀던 모습, 나를 위하여 노래 부르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나는 뜨락에 온갖 꽃을 키우는 재미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이슬꽃, 수선화, 백합화, 크로커스 등이 필 때는 집안에 향기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낯선 손님 둘을 데려왔습니다. 나는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2)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소돔의 흉악한 깡패들이 몰려왔습니다. 손님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때 남편은 나에게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충격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딸이 둘 있소. 그 아이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나 내가 모신 분들에게만은 아무 짓도 말아주시오”(창 19:8 공동번역).

평소 여자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던 남편이지만, 이번 결정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딸들, 그것도 결혼을 앞둔 딸들을 내주겠다니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 딸은 벌벌 떨며 나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서로 꼭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하갈의 기도도 들어주셨던 하나님, 우리 모녀를 구하여 주십시오.”

남편에 대한 애정도 거의 없었지만, 그 순간 그와 함께 살 소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일은 매우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시끄럽게 떠들던 마을 사람들은 웬일인지 조용해졌습니다. 두 낯선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우리에게 소돔성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3) 물질에 욕심이 많았던 남편은 우물쭈물하였습니다(창19:16). 남편은 직감적으로 소돔을 떠나면, 그동안 쌓았던 재산을 다 잃어버린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우리 손을 잡아끌면서 “빨리 떠나라”라고 재촉하였습니다. 그들은 말하였습니다.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 이 분지 안에는 아무 데도 머물지 마라. 있는 힘을 다 내어 산으로 피해야 한다”(창 19:17 공동번역)

우린 산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먹장같이 검게 변하였습니다. 순간 '우르릉 쾅' 천지를 찢는 큰 소리와 함께 불이 떨어졌습니다. 유황 타는 냄새가 역겹게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에는 온갖 동물이 우리와 함께 뛰었습니다. 사슴, 양, 여우, 토끼, 햄스터, 메뚜기까지 달렸습니다. 순간 저 혼자 살겠다고 앞서 달려가는 남편의 뒤통수가 보였습니다. 어느새 딸들의 손도 놓아버리고 혼자 달리는 남편의 벗겨진 뒷머리가 역겨웠습니다. 내가 죽으면 저 사람이 나를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길까?


마침 샌들의 가죽끈이 풀어졌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나는 신발 끈을 고쳐 매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때 가슴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사는 게 뭐지?’  꿈을 좇던 젊은 시절부터 떵떵거리며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던 남편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살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처자식 손을 다 뿌리치고 혼자 달려가는 남편이 가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불 구덩이에서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마을 사람들은 더 불쌍하였습니다. 고향 떠난 후 이곳저곳 참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래도 소돔에서 제일 오래 머물면서 정 붙이고 살며 두 딸을 낳았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마을 광장, 꽃향기로 가득했던 뜨락의 화단, 커다란 집의 넓은 창문. 이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다시 정처 없이 뛰고 있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나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힘이 쭉 빠졌습니다. 


나는 마을 사람을 버려두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남편 따라 또 도망가 보았자 다시 욕심에 사로잡혀 헛된 인생을 살 것이 뻔하였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마도 나의 삶에 대해 분노하였기에 뒤를 돌아보았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고향과 정든 땅을 떠나는 것에 지쳤는지도 모릅니다. 혼자라는 외로움 때문에 돌아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나는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나의 죽음 앞에 꽃을 가져다주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4) 제발 나의 죽음을 한낮 조롱거리로 비웃지 말아 주기 바랍니다. 


1) 고대 사회에 신상을 만드는 계급은 제사장 계급으로 최상위 계층이다. 

2) 성경은 손님을 대접하는 주체로 남성(아브라함, 롯)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음식을 장만한 것은 아내들이었다. (창 18:6-8)

3) 천사가 롯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할 때 롯의 아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창 19:12)

4) 초대 교부 이레니우스는 롯의 부인이 소금기둥이 된 것은 처벌의 상징이 아니라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반성하고 믿음을 따라 사는 경고라고 해석하였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는 ‘롯의 아내’라는 시를 통하여 롯의 아내가 가졌던 마음을 노래하였다. 독일의 침략과 소련의 지배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었던 시인은 롯의 아내가 가졌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재난을 경험하면서 영웅도 나오지만,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 수많은 보통 사람(롯의 아내)은 일상의 소중함과 터전의 상실 속에 고뇌하기 마련이다. 이 글은 쉼보르스카의 '롯의 아내'를 읽고 영감을 얻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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