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gos Brunch Jul 21. 2019

단조로움에서 행복을

“나는 마음껏 즐기며 행복을 누리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이것 역시 헛된 것이다.”(전 2:1, 현대인의 성경) 


아기는 연신 “까르륵까르륵” 웃는다. 그저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까꿍”했을 뿐이다. 즐거워하는 아기를 보면서 나도 계속 “까꿍”을 하였다. 이런 반복을 계속하다가 나는 금세 지쳤다. 체스터톤(G.K.Chesterton)은 말하였다.  “어른들은 단조로움을 기뻐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


큰 애가 대여섯 살 때 동화책 읽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아직 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는 내게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하였다. 아이의 지적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나는 있는 힘껏 책을 읽어주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였다. 계속되는 아이의 요구에 나는 금세 싫증을 느꼈다.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해.”나는 단조로움이 주는 기쁨을 느낄 여유나 힘이 없었다. 


삶에는 온갖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다만 그것을 지속할 힘이 우리에게 부족할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고 힘차게 돌린다. 커피 향이 그윽하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컴퓨터 화면을 켤 때, 또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감사한다. 커피는 아침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온종일 커피를 마실 순 없다. 


공부하다 지치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로망스 ‘라르게토’를 틀면 순식간에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작곡가나 연주가들은 정말 대단하다. 가사 하나 없는 곡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질 수 있다니. 건반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에 멍하니 마음을 쏟는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다져 잡고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삶에는 갖가지 즐거움이 가득하다. 육체적 즐거움도 많다. 미국에 와서야 음식 만드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 깨달았다. 하루 세끼가 행복하다.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이 얼마나 좋은지 조금씩 느끼고 있다. 물론 안 좋은 쾌락도 있긴 하다. 술, 마약, 도박, 섹스.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즐거움을 세상이 제공한다. 


보다 고상한 즐거움도 있다. 신실하고 예의 바른 친구와의 우정도 즐겁다. 인간관계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은 실로 크다. 책을 통하여 얻는 진리도 큰 기쁨이다. 어려운 신학 서적을 붙잡고 끙끙대다 그들의 논리를 깨달았을 때 얻는 즐거움은 표현하기 어렵다. 고통받는 사람의 형편을 헤아려주고 그를 도와주는 섬김의 기쁨은 아름답다. 그러나 고상한 즐거움이라고 언제나 행복하지는 않다. 때로 힘들어 지칠 때도 있다. 

전도서 저자는 마음껏 즐기며 행복을 누리겠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헛되다고 하였다. 단조로움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을 알고 있음이다. 아기 때는 단조로움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꼈으나 우리는 그 귀한 능력을 잃어버렸다. 이젠 무얼 해도 즐거움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그 즐거움의 끝에는 언제나 허무와 고통이 기다린다.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는 “쾌락도 노동이며, 똑같이 피곤하다”라고 하였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말하였다. “오, 주님! 당신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의 영혼에는 안식이 없나이다.” 세상에서 얻는 즐거움, 인생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는 복되다. 하나님께 마음을 연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고, 변화가 시작된다. 즉각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한다.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과 열정이 우리에게 전하여진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열매로 ‘희락’을 언급하였다. 세상과 다른 하늘의 기쁨이고,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희락이다. 


체스터톤은 말하였다. “하나님은 단조로움을 크게 기뻐하실 만큼 강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아침마다 해에게 “다시 하라”고, 저녁마다 달에게 “다시 하라”고 말씀하신다. … 자연 속에서의 반복 순환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어쩌면 연극의 ‘앙코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알을 하나 낳은 새에게 ‘앙코르’를 요청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에서 희락을 느끼실 만큼 강하시다.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하는 그리스도인 역시도 단조로움 속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요즘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움에서 누리는 행복을 배워가는 중이다. 


참고도서 

1. McCullough Donald, 모자람의 위안(The Consolations of Imperfection), 윤종석 옮김, 서울 : IVP, 2006년

2. G.K.Chesterton, 오소독시(Orthodoxy), 윤미연 옮김, 파주 : 이끌리오, 2003년

3. Dawn Marva J., 안식(Keeping the Sabbath Wholly), 전의우 옮김, 서울 : IVP, 2001년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교회, 어디 없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