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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18. 2019

사랑은 하지 않는 것이다.

“너는 뭐가 부족해서 날마다 불평이냐!”

“학원 보내달라고 하면 학원 보내줘. 아이폰 사달라고 하면 사줘. 네가 필요한 건 다 해주잖아.”

“너 지난번 유럽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한 달간 유럽 여행도 보내주었잖아”

“아빠 엄마 같은 사람 없다.”

“네가 해달라고 하는 건 다 해주는데 왜 날마다 얼굴에 열십자를 그리고 있느냐.”

“내가 너 같으면 정말 죽으라 공부했을 거다.” 


부모는 언제나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능력이 자라는 한 어떻게 해서든지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녀는 그렇게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은 듯하다. 무엇을 더 해달라는 게 아니다. 무엇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매일같이 하는 잔소리가 너무 지겹다. 자녀 교육 방법을 두고 말싸움하는 부모를 보는 게 너무 싫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간섭과 통제와 지시와 성냄은 지금까지 받았던 돈, 선물, 꽃, 관심, 애정을 한꺼번에 다 사라지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무엇하는 것이라기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다. 물론 하는 것도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오래 참고와 온유하며 두 개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8개나 된다. 긍정적 표현 중 ‘오래 참고’는 긍정적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하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1대 9로 ‘사랑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해서 표현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셨다. 예수님의 사랑 표현법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훨씬 강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의 권위를 내려놓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심판하고 징계하고 저주하고 싶었지만, 우리의 허물과 죄를 참고 또 참으셨다. 크게 야단치고 싶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주님은 꾹 참으셨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얼마나 많이 참으셨을까? 아무리 쉽게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화를 내실만 한 데 주님은 참으셨다. 예수님은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셨다. 


우리는 사랑을 오해하였다. 사랑은 무엇을 하는 것이고, 무엇을 해주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불평했다. 

왜 나에게 복 내려 주시지 않느냐고

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느냐고

왜 나에게 건강 주시지 않느냐고

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느냐고.

우리는 사랑을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이고, 섬김이고, 낮아짐이고, 죽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픔이고, 눈물이고, 견딤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참으시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하였다. 


만일 하나님이 참지 않으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곧장 지옥으로 떨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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