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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20. 2019

죽어가며 배우는 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신뢰란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선물이다. 예수께서 신뢰를 사랑하여 죽으셨을 정도로 하나님은 거기에 황홀해하신다.” - 브레넌 매닝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고뇌하였다.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죄 짐을 짊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수님은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간구하였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 잔을 마시지 않을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예수님은 마지막 코너까지 몰리셨다. 더 이상 아무 방법이 없었다. 오직 죽음만 요구되었다. 바로 그 죽음의 순간, 주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였다. 브레넌 매닝은 ‘그 순간 하나님께서 주님의 전적 신뢰에 황홀해하셨다’고 표현하였다. 


살다 보면 죽음의 막다른 코너에 몰릴 때가 있다. 25년 전 나는 아버지 밑에서 부목사로 사역하였다. 교회를 창립하신 아버지는 은퇴할 시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아들인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할 것이라 짐작하였다. 그 당시는 세습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창립자로서 막강한 권위를 가진 아버지였지만, 은퇴 시점이 가까우면서 장로님들은 서서히 거부감을 드러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다 보았던 장로님은 나를 제거하고 싶어 했다. 인간적인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 교감 선생님을 하던 장로님은 시대를 앞서 가셨다. 세습은 안 된다!


당회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당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결단은 내가 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선교사 지원이었다. 선교에 대한 소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가 창립한 교회에 분란이 일기 시작한다는 것이 싫었다. 선교지를 이리저리 찾다가 선택한 곳이 필리핀이었다. 필리핀 선교사 훈련 센터에 온 가족이 합숙하면서 훈련받는 곳이 있다는 소식에 두말없이 결정하였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난생처음으로 외국으로 간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작은 교회였기에 재정지원은 턱없이 모자랐다. 가족들이 합력해서 후원해주지 않았다면, 살 수 없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면서 필리핀으로 떠나는 나는 마치 음부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듯하였다. 떠나는 날 그 장로님은 나를 불러 딱 한 마디 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원튼 원하지 않든 나는 죽음과 같은 상태에 들어갔다. 한 달에 백만 원으로 집세, 비자 경비, 아이들 학비를 내고나면 손가락을 빨아야 겨우 살 수 있었다. 나는 주님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버텼을 뿐이다. 


낭떠러지 앞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배운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욥의 깨달음이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신뢰)하리니”(욥 13:15, KJV)

모진 고난 속에서, 친구들과 가족이 욥을 등졌을 때 그가 신뢰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답을 구할 수도 없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루터는 말하였다. 

“우리는 죽음에서나 심연에서나 또는 의심에서나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무서운 죽음이 나를 에워싼다고 할지라도 나는 나에게 삶을 주는 이 말씀을 가지고 있다. 너, 바로 네가 살리라!”(Thielicke, 155)


나는 미련하고 둔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어리석고 고집불통인 나를 사랑하셔서,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 떨어지더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씀이다. 헨리 나우웬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는 내 사랑을 받는 자다.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다. 돌아다니지 마라. 네가 사랑받는 자임을 만인에게 입증하려 하지 마라. 너는 이미 사랑받는 자다.” (Nouwen,36)

죽음의 골짜기로 내려가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신 것은 그런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래도 나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오늘도 불평 반, 감사 반으로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배워간다. 


Manning Brennan, ‘신뢰’(Ruthless Trust), 윤종석 옮김, 서울 : 복있는사람, 2017년

Thielicke Helmut, ‘그리스도와 삶의 의미’(Christ and the meaning of Life), 이계준 옮김,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83년

Nouwen Henri J.M., ‘사랑의 존재’(Beloved), 윤종석 옮김, 서울 : 청림출판,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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