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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os Brunch Aug 23. 2019

내 생애 가장 빛나는 날

어떤 분이 물었다. 

“목사님은 다른 사람을 미워한 적 없어요?”

나는 대답했다. 

“왜 없겠어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기도 했지요.”

“때로는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고요.”

그분은 다시 물었다. 

“목사님, 과거형으로 대답하시는 것 보아서 지금은 없는 건가요?”

“제가 은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믿었던 친구에게서 외면당하기도 했고요. 저를 지지해주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안면 몰수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까 분노보다는 그저 슬프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생이 슬프고, 사람이 슬퍼요.”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는 이런 말을 하였다. 

“내 생에서 가장 빛나는 날은 성공한 날이 아니라 비탄과 절망 속에서 생과 한번 부딪쳐보겠다는 느낌이 솟아오른 때다.”


한국에서 모든 신분과 지위를 내려놓고 미국으로 올 때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마음먹었다. 이왕 내려가는 거 철저하게 내려가자. 목사라는 직책과 위치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평신도로 내려가자. 그런 마음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였다. 

이해인 수녀의 시 중에 ‘어떤 결심’이 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이해인 수녀의 시는 내 현재 상황에 딱 맞다. 꼭 하루씩만 살기로 하면서 지내었는데 어느새 저만치 행복이 찾아왔다. 만나는 사람이 모두 사랑스럽고, 내가 해야 할 자그마한 일들이 매우 고맙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에 니체가 있다. 비록 무신론자이지만, 내가 보기에 니체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갈망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 고독하며, 누구보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지만, 그의 도전은 실패하였고 슬프게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사물에서 필연성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 싶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사물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다. 운명애運命愛(amor fati)! 앞으로 내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나는 비난하지 않겠다. 심지어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비난하지 않겠다. 시선을 돌리는 것이 내가 유일하게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나는 긍정하는 사람 그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다.”(즐거운 학문에서)


그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 체념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아픔을 자기 몫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삶에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찾아갔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쓴 김난도 교수는 이렇게 썼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 자기 삶의 짐을 가장 정확한 무게로 받아내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김난도, 59) 


사도 바울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나는 오늘 하루도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면서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믿으며 살기로 다짐해본다. 


Thomass Balthasar, ‘우울한 날엔 니체’(S’affirmer avec Nietzsche), 김부용 옮김, 서울 : 자음과 모음, 2013년

김난도,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서울 : 오우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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