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로 앞에서 여고생 두 명이 골프를 치고 있었다. 화이트 스웨터에 스커트를 입은 모양새가 단정하였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제대로 레슨을 한 탓인지 스윙 자세가 참 예쁘다. 골프를 치면서 스트레스 없이 재미있게 치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때 멀리서 한국 아주머니가 피크닉 가방을 들고 오셨다. 미국 여학생은 아주머니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헤어컷 하셨네요” 하였다. 그 질문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칭찬과 관심이다. 둘째 짧더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아주머니 반응은 아주 차가 왔다. 눈인사만 하고 칭찬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아이들을 지나쳐 -그 아이들 또래로 보이는 - 자기 딸에게로 갔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먼저 아주머니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뭔가 바쁘거나, 조금 전 기분 나쁜 일이 있었거나, 헤어컷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혹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국 문화는 칭찬에 인색하다. 옛 어른들은 자녀를 엄격하게 키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응석받이로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어디 가서 건방을 떨거나, 교만하면 부모에게 욕을 먹인다고 생각하였다. 자녀가 아무리 훌륭해도 쉽게 칭찬하지 않았다.
칭찬하는 문화가 없으니 칭찬받는 것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옷이 참 예쁘네요”라고 말하면 “고마워요 감사해요”라고 말하기보다 “이거 몇 년 전부터 입은 것인데요”하면서 오히려 면박성 대꾸를 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제 옷이 구식이라서 놀리는 거예요” 되받아친다. 점잖은 분은 “아니 별로예요. 뭐 이런 걸로”라고 말한다.
교회를 사랑과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분위기로 바꾸고 싶어서 함께 성경공부하는 분들에게 숙제를 내주었다. 누군가를 격려하거나 위로하거나 사랑하는 표현을 5장의 카드에 써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 한 주일 후 나는 그 카드를 받은 교인들이 매우 기뻐하였을 거라고 예상하며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반응은 의외였다. 카드를 받은 대다수 사람들이 “왜 나에게 이런 카드를… 주세요” 하면서 몹시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카드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신에 “부담스럽습니다”가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일주일 동안 고민하면 카드를 만든 교인들은 크게 낙심하였다. 그래도 계속하라고 격려하였지만, 카드 쓰기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미국 유치원에 칭찬하고 칭찬받기 프로그램이 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는다. 남자가 먼저 여자에게 칭찬한다. 칭찬은 아주 간단하다. 안경, 머리 스타일, 옷, 신발, 눈 색깔, 자세 등등을 칭찬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후 다시 상대방을 칭찬한다. 때로 원을 그리고 앉아서 옆 사람에게 칭찬을 주고, 칭찬을 받는 훈련을 한다. 칭찬 릴레이다.
칭찬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칭찬을 잘 받는 것이다. 칭찬을 잘 받지 못하면 칭찬하는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사람을 얻는 기술’을 쓴 레일 라운즈는 “칭찬을 주고받는 건 부메랑을 던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칭찬하면 좋은 감정이 칭찬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것은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라는 간단한 말로 할 수 있다.
칭찬하기 운동을 하다, 우리가 얼마나 칭찬받기에 어색한 지를 깨닫게 되었다. 칭찬하면 오히려 아부로 이해하는 때도 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은혜와 사랑과 격려를 '받는'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인 중에 유독 율법주의가 많은 이유는 '받기'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받을 이유가 있나? 내가 은혜받을 이유가 있나? 내가 뭔가 잘해야 내가 뭔가 훌륭해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로 사랑하신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존중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한국 교회에 비판과 평가와 험담이 많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잘 받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칭찬하기 운동을 하면서 동시에 칭찬받기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작은 관심을 보였을 때 기꺼이 고마워하면서 그에게 밝은 기운을 돌려주면, 그게 바로 크리스천 문화가 될 것이다.
“칭찬이나 관심을 가진 질문의 형태로 당신 삶에 드리워진 약간의 햇빛을 그들이 비춰줄 때마다, 햇빛을 준 사람에게 되돌려주라.” - 레일 라운즈
Leil Lowndes, ‘사람을 얻는 기술’(How To Talk To Anyone), 임정재 옮김, 서울 : 토네이도, 2007년